[이현덕의 정보통신부]<106>TDX(6)도입기종 대통령 결재받아

“국민의 편익을 위한 일인데 당연히 전자교환기를 개발해야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전자교환기개발단장으로 한국전자통신에 있는 양승택 박사를 불러 주십시오.”

1981년 8월 어느 날.

최순달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체신부 장관 역임)은 오명 체신부 차관(체신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과기 부총리 역임, 현 웅진에너지 폴리실리콘 회장, KAIST 이사장)에게 양 박사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오 차관의 대답은 군말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요.”

오 차관의 증언.

“나는 사람을 뽑을 때 직접 데리고 일할 상사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한다. 직접 데리고 일할 사람이 점찍은 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 박사를 데려 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삼성 쪽에 그를 보내달라고 하니 펄쩍 뛰는 것이었다. `왜 하필 그 사람입니까. 우리도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어렵게 데려왔습니다. 보낼 수가 없습니다.”(자서전 `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중에서)

오 차관은 선배인 이춘화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자교환기 개발 사업은 정부 수립이래. 국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그가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어차피 삼성도 공동 개발을 하게 되니 삼성에 있는 분이 단장을 맡으면 삼성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이춘화 사장은 1948년 육사를 졸업하고 육본 통신감과 합참 통신전자국장을 지낸 예비역 소장 출신이었다.

양승택 박사(ETRI 원장, ICU 총장, 정보통신부 장관, 동명대 총장, 현 IST컨소시엄 대표)는 최 소장의 서울공대 7년 후배였다. 양 박사는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해군 중위로 예편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 브루클린공과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벨연구소에서 11년간 근무했다. 1979년 2월 귀국해 한국전자통신 기술담당 상무로 일하고 있었다.

양승택 전 장관의 회고.

“최 박사가 1981년 1월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에 임명되고 나서는 자주 만났다. 어느 날 기차에서 만나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대우가 좋은 회사 상무직을 버리고 연구소로 오겠느냐`고 하셨다. 나는 `젊은데 월급 더 받는 것에 만족해서 되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그해 9월 최 소장을 만났더니 `나를 교환기개발단장으로 정부에 추천해 놓았으니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후 오명 체신부 차관과 면담하게 됐다. 오 차관은 `교환기 개발은 국가의 중요 연구과제이니 연구소 개발책임을 맡아 달라`고 했다.”

양 박사는 며칠 후 이건희 삼성그룹 부회장(현 그룹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양 박사에게 말했다.

“정부에서 양 박사가 필요하다니 보내 드립니다. 장기 출장이라고 생각하고 가서 일을 끝내면 돌아와 주세요.”

그해 10월 양 박사는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에 출근해 최 소장으로부터 시분할 교환기개발사업단장 임명장을 받았다. 그 당시 개발단장은 부소장인 경상현 선임연구부장(체신부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이 겸직하고 있었다. 경 부소장은 1982년 1월 18년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 무렵 체신부는 시분할 교환기종 선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체신부는 이를 위해 오명 차관을 위원장으로 기종 선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했다.

심의위원은 체신부 배호원 기획관리실장(체신공제조합 이사장 역임, 작고), 이응효 계획국장(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 데이콤 사장 역임), 이희두 전무국장(한국전기통신공사 국제통신사업본부장 역임), 김정렬 보전국장, 안희수 기술조정관, 정도길 전기통신시험소장(정보통신훈련센터 이사장 역임)과 최순달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 경상현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 등이었다. 위원회 간사는 이정욱 체신부 계획3과장(한국통신 부사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감리협회장)이 맡았다. 당시 미국과 스웨덴, 캐나다, 일본, 서독 등의 주요 교환기 업체들이 기종경쟁을 벌였다. 이들의 로비는 치열했다.

오 차관은 8월 20일부터 연속 3일간 시분할교환기 기종선정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열었다.

오 차관 주재로 8월 22일 열린 3차 회의 발언 내용을 들어보자.

△오 차관=시외 전자교환기(NO.4 ESS)를 채택할 필요가 있는가.

△이응효 계획국장=초기에는 외국 기술자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안희수 기술조정관=중용량 시외용과 농어촌용 도입을 구분하자. 먼저 중용량 시외용부터 기종을 선정하고 농어촌용은 국산화하자.

△경상현 부사장=의미가 있다. 선정한 기종회사에서 기술전수만 받는다면 국내 개발에 큰 문제는 없다.

△오 차관=중용량 교환기를 도입하면서 기술전수를 받아 우리모델로 국산화하자.

△김정렬 보전국장=시험용은 괜찮으나 국산화 후 불완전한 교환기를 10만~20만대 설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경 부사장=고장률이 높아도 교환기를 국산화해야 한다.

△배효원 실장=국산화해도 완전무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 차관=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3~4개 기종을 압축, 검토해 보고하라.

체신부는 위원회 안에 기종선정 실무반을 구성했다. 총괄책임은 이응효 계획국장이 맡았고 행정실무는 이정욱 계획3과장과 이상범 계획4과장이 담당했다. 기종협상은 전자통신연구소가 맡아 가격과 공급시기 등을 협의키로 했다. 연구소는 계약과 기술협상 실무반을 편성해 외국 교환기업체와 협상을 벌였다. 막판까지 경합을 벌인 외국 교환기 업체는 노던텔레콤(NT)과 에릭슨이었다. 그러나 NT는 기술이전에 소극적이었다.

중용량 시외교환기 도입협상을 맡았던 양 단장의 증언.

“협상 상대는 스웨덴 에릭슨이었다. 에릭슨이 제시한 1억6000만달러를 협상을 통해 1억2000만달러로 4000만달러를 깎았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240억원이었다. 협상으로 개발비 240억원을 벌었다. 오 차관은 여러 자리에서 이 일을 자주 언급했다.”

체신부는 이런 과정을 거쳐 그해 12월 중용량시회전자교환기종 도입 방침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체신부는 가격과 성능, 한국에 대한 교환기 및 반도체 기술이전 등을 검토해 에릭슨의 AXE-10기종 도입이 가장 유리하다고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1982년 2월 5일 이 서류에 서명했다. 이 일은 막대한 이권이 걸린 일이었다. 그런 관계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기종 선정의 실무를 당당했던 이정욱 체신부 계획3과장의 증언.

“최종적으로 기술전수 내용과 가격을 평가해 에릭슨의 AXE-10기종을 결정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과기처와 상공부, 외무부 장관 협조를 얻어 부총리와 총리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았습니다.”

1982년 1월 양 단장은 전자통신연구소 선임연구부장직을 겸하게 됐다.

최광수 장관은 그해 2월 중순부터 금성통신과 한국전자통신, 동양정밀, 대우통신 등 국내 교환기 생산 4사를 차례로 방문했다. 교환기 개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신중한 성격의 최 장관은 생산현장을 직접 방문해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체신부에서는 오명 차관과 이해욱 통신정책국장(체신부 차관,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 역임), 김노철 통신기술과장(한국통신 부사장 역임)이 상공부에서 신국환 전자공업국장(산업자원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역임), 과기처에서는 이원웅 기술조정관(ETRI 부소장, 인천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역임), 연구소에서는 최순달 소장과 양승택 단장,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경상현 부사장이 수행했다.

최 장관은 3월 6일 생산 4사 방문을 끝낸 후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며 “교환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며 개인 의견을 일일이 물었다. 이들이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최 장관은 전자교환기 개발 성공을 확신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3월 9일 오후 2시.

국회에서 교통체신위원회가 열렸다. 황인성 위원장(교통부 장관, 농림수산부 장관, 국무총리 역임, 작고)의 개회 선언에 이어 최광수 체신부 장관이 인사말을 했다. 배호원 기획관리실장이 주요 업무보고를 통해 “시내 전화는 1983년부터 전량 전자식 교환기를 공급하고 시외 전화는 단계적으로 전자교환방식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교통체신위원회는 3월 12일 오후 2시 회의를 속개했다.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황인성 위원장=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대한 정책질의를 일괄해서 하겠습니다.

△이재환 의원=외국 업체는 우리보다 10년은 기술이 앞섰다고 하는데 외국의 앞선 기술을 도입해 조기에 국산화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김기철 의원=(그는 전 체신부 장관이었다) 체신부 장관 재임 시 교환기 생산체제를 놓고 진통을 겪었어요. 당시는 기종 시험이 끝나면 즉시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국산화한다고 야단입니까.

△박유재 의원=체신부가 약속한 대로 농어촌 전화시설을 공급할 수 있나요.

△최광수 장관=시분할식 전자교환기는 6월이면 전화국에 설치해 성능시험을 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저는 연구소와 한국전기통신공사, 체신부 등의 의견을 모두 들었습니다. 그 결과 전자교환기는 양산 생산체제만 갖춘다면 농어촌 교환기는 한국형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외국 기종을 도입해 설치하면 됩니다.

△이재환 의원=조립 생산하는 교환기 개발에 240억원을 투입한다는 말입니까.

△이응효 한국전기통신공사 계획국장=(그는 체신부 계획국장으로 있다가 자리를 옮김) 처음부터 완전 국산화는 어렵습니다. 외국도 모든 부품을 자국 생산품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기술로 한국형 시분할교환기를 개발한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국회 교통체신위원들의 이날 전자교환기 개발 질의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전자교환기 국산화는 교체위 의원들의 단골 질의 메뉴로 등장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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