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 자부하는 현재 위상은 1980∼1990년대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이 각광받던 시절 배출된 우수한 인재가 활약한 결과다. 2000년대 정부 정책으로 육성한 ICT 전문 인력 활약도 한몫했다.
선진국에서는 ICT 분야 직업 선호도가 여전히 높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선호도가 낮은 편이다. 따라서 우수한 인재 유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미국 커리어 캐스트(Career Cast)가 선정한 올해 유망직종에는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가 200개 직업 가운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웹 개발자·컴퓨터 프로그래머가 30위권 이내 상위 그룹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변호사는 87위, 교사는 92위로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엔지니어의 평균연봉도 상위권을 차지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학생과 학부모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진로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교사·공무원·경찰관·간호사 등 순으로 나타났다. 학부모는 공무원·교사·의사·판검사 등 순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생 진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안정적이고 사회적 평판도가 높은 직업`이 26.7%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미래의 사회와 기술발전을 선도하는 직업`은 5.7%로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미국과 반대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직업 선호도가 매우 낮다. 국내 SW 엔지니어의 평균연봉도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수 인력의 ICT 관련 학과 진학과 취업 기피로 이어진다. 전문 인력 이직률도 크게 증가한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KAIST·포스텍 5개 대학의 2011년 SW 관련 전공 재학생 수는 2009년보다 24.7%나 감소했다. SW 전문 인력 이직률도 2010년 기준 17%로 크게 증가했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 ICT 산업에 대응할 인력 수급의 질적 불일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ICT 생태계와 기업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고급 전문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 기업이 자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산학협력을 통한 인재양성 프로그램도 적극 운영한다. 이는 단기적인 인력 확보 방안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지만, 우수 인재의 ICT 분야 유입이 이뤄지지 않고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
유망 직종으로 선호되지 못하는 것은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하며 직업 안정성이 낮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ICT가 우리나라 핵심 성장동력으로 위치를 확고히 지키려면 ICT 관련 학과 우수 학생에게 장학금과 병역혜택 등을 부여해야 한다.
관련 학과 우수 졸업생이 군 복무 중에도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장교로 복무하면서 전공 관련 업무에 종사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점차 증가하는 군대 내의 ICT 인력수요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ICT 관련 학과의 대입정시 배치표와 입시 경쟁률 순위가 1980∼1990년대 수준의 상위권으로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구글·애플 같은 기업을 탄생시키는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ICT 전문 인력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획기적인 정책 개발에 지혜를 모으는 한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박정호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 jh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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