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내 주요 기업 정보화가 `차세대`로 가는 징검다리 해다.
삼성·KT·포스코·효성그룹을 비롯해 많은 비금융 기업이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포함한 주요 경영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는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차세대 시스템은 주로 금융기관의 용어였지만 이제는 제조, 물류, 유통 등 비금융권에서도 차세대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본격 확산되고 있다. 전사 업무프로세스를 바꾸고 의사결정체계를 고도화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주로 ERP를 포함한 핵심 업무시스템 개선이 골자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선도적으로 ERP를 도입했던 많은 기업이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대대적 정보시스템 개편으로 다음 세대 업무 혁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디지털 경영 10년 만에 도래한 비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열풍을 살펴봤다.
◇규모는 커지고, 기준은 단일화=대규모로 추진되는 비금융권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기업 비즈니스 규모가 훨씬 더 커진 만큼 새롭게 추진하는 IT프로젝트 범위도 방대해졌지만 효율적으로 더 많은 것을 관리하고자 표준화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삼성·KT·포스코·효성·교원 등 올해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ERP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통합과 표준화를 활용한 기준 단일화는 최근 비금융권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필수 요소다. 더 복잡해진 업무와 많은 임직원 및 해외 법인을 관리하는 ERP 시스템 도입 범위는 확대하면서도 가능한 한 단일화된 시스템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물류·구매와 공급망관리(SCM) 등 넓은 범위의 표준화 시스템 도입을 시도해 업무 간 연계를 확장하면서도 분리된 시스템을 통합하고 그룹 차원의 △단일 패키지 시스템 △표준화된 데이터 체계 △표준 IT서비스관리(ITSM)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그룹 내에서 사용하던 각 계열사의 패키지와 운영 방식이 달랐다면 차세대 프로젝트에서는 이를 통일하는 추세다. 각종 데이터를 다루는 기준도 표준화 대상이다. 일류화 프로젝트로 ERP 패키지와 그룹 기준정보를 일원화하는 삼성그룹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포스피아 3.0` 프로젝트를 활용해 그룹 차원에서 표준화된 업무 개선을 기치로 삼는 포스코도 유사하다. 효성그룹도 비슷한 사례다.
통합된 시스템 운영이 한곳에서 이뤄지면서 정보의 흐름, 변경 및 수정 권한이 본사로 집중된다. 서버 등을 물리적으로 통합 데이터센터에 모으고 정보 결집력을 높이면서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 결정 주체로서 중앙 조직의 역할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추진한 글로벌 ERP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기본 사상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업계, GS25와 훼미리마트 등 편의점 업계에 이르기까지 같은 방식이 도입됐다. 의사 결정 속도는 높일 수 있지만 각 해외 법인 및 비즈니스 부서별 특성을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조직의 메시지를 빠르게 전파함으로써 글로벌 조직 프로세스와 의사결정체계를 상향평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추진 방식에 기업 문화 반영…문화 혁신도 병행=각 기업의 차세대 프로젝트는 대단위 투자만큼이나 해당 기업의 문화와 장기적 방향성이 뚜렷이 반영돼 있다.
삼성과 LG그룹은 많은 계열사가 차세대 ERP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패키지 전략에서 차이점이 뚜렷하다. 삼성은 `표준화`를, LG는 `자율 우선`을 내걸고 있다.
LG그룹 계열사 임원은 “삼성과 달리 LG는 각 계열사의 비즈니스 방향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비즈니스 지원을 위해 계열사별로 시스템을 잘 운영하고 있는지만이 관건”이라면서 그룹 차원 IT표준화에 부정적 평가를 했다.
삼성그룹은 단일 패키지와 기준 정보 표준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금융 등 업종을 불문하고 같은 패키지를 강요하고 있어 일부 현업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신세계 이마트는 신세계I&C 인력이 차세대 ERP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고 있어 전 그룹에 ERP 패키지 도입을 확대하고 있는 롯데그룹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자 관리에도 기업별 문화 차이가 있다.
KT는 액센츄어 등 일부 사업자에서 대단위 프로젝트 추진 파트너십을 강화한 반면에 포스코는 비교적 다양한 사업자가 고르게 경쟁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포스코는 프로젝트관리조직(PMO)을 비롯해 영역마다 컨설팅 기업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포스코ICT 내 외부 컨설팅 인력을 영입해 만든 컨설팅사업부가 차세대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또 인수합병(M&A)에 따른 문화적 특성도 중요한 요인이다. KT·LG유플러스와 하이트진로 등은 기업 간 합병에 따른 문화적 통합을 위한 시스템 통합도 차세대 프로젝트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ERP를 포함하는 차세대 통합 물류 시스템 가동을 앞둔 CJ대한통운은 CJ그룹과 M&A 시너지를 내고자 차세대 시스템 방향 수립 과정에서 시스템 개발 일정을 바꾼 바 있다.
효성은 IT프로젝트의 첫 여성 임원 프로젝트관리자(PM)로 김혜경 전무를 베어링포인트에서 영입하고 그룹 차원 PI·ERP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모바일·클라우드 신기술 도입은 필수=스마트폰 업무 적용 확산은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의 기본 방향에서부터 `모바일` 업무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추진된다. 삼성그룹은 S-ERP 개발과 함께 동시에 모바일 업무 개발도 추진하고 있으며 포스코·효성·KT도 마찬가지다.
신기술 적용 또한 그룹 차원의 공통된 플랫폼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특징이다. 클라우드 등 신기술 개발에 주력하면서 각 계열사에 표준화된 방식을 전파할 수 있는 삼성SDS, 포스코ICT 등 IT서비스 기업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
아직 핵심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일부 업무에서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KT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했으며 이 같은 추세는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포스코는 신기술 도입을 `문화 혁신` 도구로 삼고 있으며 클라우드와 스마트워크 시스템 등 다양한 IT 도구를 잘 접목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피아3.0은 미래 일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여정이며 구글 서비스 도입은 고정되고 경직된 포스코의 문화를 바꾸고 업무 속도 전반을 개선하려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추진 중인 대표적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