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50년.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에서 2만4000달러로.`
올해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빛을 본 지 만 50년이 되는 해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고 50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국가주의에 기초한 계획경제로 개발독재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 계획으로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무역 1조달러, 외환보유고 3000억달러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1962년 1월 13일 박정희 군사정부의 송요찬 내각수반 겸 외무부 장관은 담화문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출범을 공포했다. 국민경제의 획기적 발전으로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획은 당시 정치·경제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2차 산업을 중심으로 연평균 4.7%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한국전쟁 피해가 상당 수준 복구됨으로써 안정적 위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1961년 5월 군사쿠데타 이후 정치정세 변동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내재적 불균형이 심화돼 다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만연,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됐다. 군사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체계적 경제발전 계획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추진했다. 1997년 폐지될 때까지 7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단행됐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의 주요 골자는 전력·석탄의 에너지원과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해 경제개발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수출을 증대해 국제수지를 균형화하고 기술을 진흥하는 일도 포함됐다.
1차 계획 성과는 눈부셨다. 수출 증대에 힘입어 5년간 경제성장률은 당초 목표치(연평균 7.1% 성장)를 웃도는 7.8%를 기록했다.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수출기반 확대(2차), 중화학공업화 선언(3차), 경제강국 건설과 산업 합리화(4차), 국제 일류화(5차), 공업 수준 세계화(6차) 등 새로운 전략과 목표를 제시한다.
7차에 걸친 경제개발 계획으로 이룩한 고도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1961년 8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7차 계획 마지막 해인 1996년 1만2518달러로 35년간 153배 늘었다. 같은 기간 GDP도 21억달러에서 5728억달러로 273배로 성장했다. 제조업 비중은 15% 미만에서 30%로 늘었고, 수출 비중은 1% 미만(4100만달러)에서 28%(1250억달러)로 급증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많은 나라가 전후 경제를 재건하거나 식민지 및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지만 우리나라만큼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곳은 없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이 강력한 의지로 경제 발전을 추진했고 여기에 `잘살아 보자`는 국민 의지와 잠재력이 상승작용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계획을 강도 높게 추진한 경제기획원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부총리 부서인 경제기획원은 계획 수립과 정책 조정, 예산, 외국자본 조달 및 배분, 통계관리 등 계획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를 장악해 일사불란한 정책 추진이 가능했다. 특히 예산을 가지고 정부 전 부처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고 외국자본 배분으로 민간 기업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정부는 경제성장률과 산업별 생산수준, 총투자 규모, 저축투자 계획, 외자조달 계획 등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했다.
이 결과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성공하며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과 기업을 배출했다. 조선·전자·반도체·철강 산업 등이 세계 5위권 안에 들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현대자동차가 포드를 제쳤다. 50년 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을 해낸 것이다. `하면 된다`는 슬로건이 허황된 것이 아닌 현실이 됐다.
그러나 정부주도형 성장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경제주체로 하여금 정부의존적 태도를 갖게 만들었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더디게 했다. 모든 결정은 정부를 통한다는 관치의 깊은 뿌리가 아직 산업계에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한 시장 규칙보다는 재량에 의존한 정부-기업 관계가 형성돼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된 정경유착 관행을 고착화했다.
정부 주도 통제 경제로 생긴 폐해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경제계획을 성장 중심으로 운영하고 소비자 후생 대신 생산과 저축을 강조함으로써 공급자 중심 경제관이 형성됐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비효율적 생산이라도 생산은 유익한 것이고 아무리 합리적 소비라도 소비는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1980년대 중화학 공업 과잉설비 문제와 지나친 국내 산업 보호, 부실기업 양산을 초래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성과에 비하면 이 같은 부작용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 삼성전자가 20위를 기록하는 등 우리 기업 13곳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50년간 이어진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의 결과물이다.
산업화 50년을 기반으로 이룩한 이 같은 성과를 앞으로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50년은 자율과 창조성을 기반으로 한 산업화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하나가 돼 산업화에 전념했다. 경제성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몇몇 산업 분야에서 선두권에 진입했고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세계가 벤치마킹할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압축적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산업화 결과를 소수 대기업과 계층이 독점하려는 문제다. 이러한 독점으로 갈등과 피폐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산업화 정책은 생산물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분배하는 데도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출 다변화도 필요하다. 한국의 수출 구조는 지극히 대기업에 편중돼 있고 반도체·자동차·건설·조선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수출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도 다수 있지만 해외에 진출해 성과를 올리는 기업은 극소수다. 따라서 독일과 같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 나타나야 전체 수출 구조가 건강해질 것이다.
전통산업에 IT를 접목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최근 융합IT가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부가가치 제고와 신시장 창출에 크게 기여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0년 동안 기업가 정신이 한국경제 부흥을 주도했다면 미래 50년은 창조적인 인재가 이끌어갈 것이다. 창조적 인재 양성에 국가역량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제 대한민국은 미래 5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정부와 기업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한다면 한국경제는 50년 후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