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PL 기획 2회]미국을 앞지른 EU 제조혁명의 핵심 SS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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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 기업들도 많이 적용하고 있지만 `시스템 & 소프트웨어 프로덕트 라인(SSPL)`의 시발지는 유럽이다. 유럽 기업들은 1990년부터 SSPL을 적용, 자동차·항공·통신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에 앞서고 있다. 유럽이 적극적으로 SSPL을 적용한 것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량생산체계를 구축한 미국에 경쟁력이 크게 뒤처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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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술혁신 활동 ITEA의 단계별 SSPL 프로그램.

유럽연합(EU)은 1990년대 초 범EU 차원에서 기술력 선진화를 위한 ITEA(IT for European Advancement)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중국과 인도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다. SSPL은 ITEA 프로그램의 근간인 소프트웨어(SW) 분야의 핵심이다. EU는 SSPL을 통한 기술혁명으로 대량맞춤생산체계를 구축하고 품질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속적 경제성장과 신규 일자리 창출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EU, 2단계 걸쳐 9조원 투자=EU가 SSPL을 도입한 목적은 △고객만족도 제고 △품질개선 △제품 개량 용이성 증대 △복잡도 증가에 대한 대응력 제고 △원가절감 △원가산정의 정확도 개선 △유지보수비 절감 △제품출시 소요기간 단축 등 크게 8가지다.

EU는 SSPL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20년 동안 크게 2단계로 나누어 9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1단계인 1995년부터 2006년까지 EU는 아레스(ARES), 프레이즈(PRAISE) 등 5개 프로그램을 수행해 SSPL을 산업계에 도입·확산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추진되는 2단계에서는 SSPL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인 모시스(MoSIS)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U는 자동차, 항공, 의료, 통신, 가전 등 5개 분야를 핵심 산업분야로 지정해 SSPL 적용을 추진했다. 그 성과는 각 산업에서 나타났다. 항공산업에서 에어버스(Airbus)는 민항기 대수 기준 1990년대 보잉에 4 대 6으로 열세였던 시장점유율을 2010년 기준 6 대 4로 뒤집었다. 헬기 제작업체 NH인더스트리스, SAP, 세계 자기공명영상(MRI) 의료기기 시장 등 여러 기업과 산업에서 SSPL을 적용해 성장을 이뤄냈다.

대표적 성공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다. 현재 세계 3대 고급 자동차 업체(BMW, 벤츠, 아우디)를 유럽이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미국차에 비해 유럽차가 월등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자동차 시장점유율은 1994년 미국과 유럽이 49.2%와 50.8%로 비슷했다. 한국 경제위기 시기에는 미국 점유율이 59.1%로 상승했다.

하지만 그 이후 유럽산 자동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반면에 미국산 자동차 시장점유율은 곤두박질쳤다. 2010년 유럽차는 7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는데 미국차는 10%에 그쳤다. 고객은 미국차보다 더 저렴한 국산차나 고급 유럽차를 선택한다.

이지현 대전대학교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단순한 대량생산체제와 대량맞춤생산체제가 경쟁한 결과”라며 “유럽 국가들이 연합해 적극적으로 SSPL을 도입하고 표준을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요구사항 대응에 탁월=SSPL을 적용한 대표적 기업에는 콘티넨털오토모티브, SAP, NH인더스트리, 에어버스, 보쉬 등이 있다. 세계 3대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부품회사인 콘티넨털오토모티브는 유럽과 북미, 아시아에 위치한 자동차 제작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차량 전장시스템을 개발·공급하고 있다. 자동차 전장부품은 자동차 구조의 쓰임새에 따라 다르고, 같은 기능의 전장부품이라도 자동차 제작사나 차종에 따라 요구사항별로 개발해야 한다.

현재 자동차 재료비에서 전장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전기차는 70%에 이른다. 신기술이 적용되면 그에 걸맞은 새로운 전장부품을 개발해야 한다. 또 안전·편의 요구사항 증대와 신가개발주기 단축은 전장부품 업체에 큰 도전사항이다. 콘티넨털 역시 세계 자동차 제작사들의 특화된 요구사항과 개발일정에 맞춰 전장부품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콘티넨털은 이런 도전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SSPL을 전장부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SW 자산 재사용을 기반으로 제한된 개발비용과 기간 내에 고객 요구에 맞는 전장부품을 개발·생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SSPL을 적용함으로써 사업부별 개별 애플리케이션 개발팀은 검증된 기반 SW를 가지고 SW 개발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개발팀의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기능 개발에 집중하도록 해줬다. 개발비용과 시간의 절감뿐만 아니라 기본 SW품질을 보장하고 고객 요구를 용이하게 수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무석 콘티넨탈오토모티브시스템 SW리더는 “요구사항 증가와 신규 부품개발, 부품단가 하락 등 변화하는 환경에서 SSPL은 그룹이 경쟁력을 갖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멘스·필립스 MRI 분야 혁신 일궈=자동차 산업과 더불어 SSPL 적용 효과를 본 대표적 산업은 의료 분야의 MRI 의료기기 산업이다. MRI는 세계 의료용 영상진단장치 시장에서 연 16%씩 급성장하고 있다. 2005년 기준 세계 MRI 시장규모는 36억달러, 2007년 경제위기 후 다소 감소해 2011년 40억달러를 유지했다. 하지만 경기회복에 따라 연 12% 성장해 2020년 20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MRI 시장에서 유럽은 1995년 중반 지멘스, 필립스를 합해도 세계 시장점유율이 30% 미만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제너럴일렉트릭(GE)은 4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 업체들은 1990년 중반부터 SSPL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이를 생산현장에 적용했다. 그 결과 GE를 능가하는 기술력 확보로 시장점유율과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 시장점유율 과반을 EU 기업이 차지했다.

지멘스는 SSPL을 통해 생산현장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품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했다. 2000년대 초반 20%던 시장점유율을 10년 만인 2011년 32%로 끌어올렸다. 세계 MRI 시장을 선도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필립스는 여러 나라에 분산된 제품라인의 플랫폼을 SSPL 기반으로 통합했다. 이를 통한 기술 축적과 SW 재사용, SSPL 프로세스 성숙도 향상은 제품 품질과 포트폴리오 다양성,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멘스는 10년 동안 한 자리였던 세계 시장점유율을 20%까지 상승시키는 혁신을 일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