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합리성 사라진 기술유출 공방

지난 2007년 5월 산업계에 큰 충격을 준 기술유출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현대·기아자동차 전·현직 임직원이 자동차 기술을 몰래 중국에 유출하려다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당시 수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차체를 만드는 기술경영상의 핵심 정보를 빼냈다. 이 때문에 회사가 보게 될 피해액은 2010년까지 무려 22조3000억원에 달했다. 공분을 일으켰다. 전·현직 직원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핵심 기술을 유출한 것도 모자라서 국내 자동차 산업을 추격하는 중국에 팔려 했기 때문이다.

4개월 뒤 법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사뭇 달랐다. 22조원을 넘는 천문학적인 피해액은 사건과 관련 자료 외에 현대·기아차의 차체와 관련된 모든 기술을 중국으로 이전할 때를 전제로 산정한 것이었다. 법원은 회사가 주장하는 피해액이 `부정확하거나 다소 과장됐다`고 판단했다.

또 사건 자료에 대한 판단도 달랐다. 법원은 `자동차 생산의 핵심적인 기술로는 보이지 않고 중국 자동차 회사 등에서 곧바로 적용하기 곤란한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전·현직 임직원 9명 가운데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한 명에게 징역형을, 7명에겐 집행유예, 나머지 1명에겐 무죄를 선고하며 마무리했다.

최근 기술유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효성과 LS산전, 외국계 장비 회사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유출 등이다. 한결같이 회사 매출의 몇 배는 뛰어넘는 수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이다.

공이 법원으로 넘어간 이상 이제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은 뒤로 한 채 비난이 난무한다. 마치 `확정된 범죄`인 것처럼 사건을 다룬다.

사건을 가급적 크게 부각시켜 자사에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가 클 것이다. 그렇다고 실체와 다르게 증폭시켜선 안 된다. 섣부른 비방과 여론전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윤건일 소재부품산업부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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