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양자정보통신기술
양자정보통신은 지난 4월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단장 황창규)이 발표한 IT 10대 핵심기술에 포함된 미래 핵심기술이다. 양자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에너지 최소 단위를 말한다. 고유의 중첩성과 복제불가능성 등을 이용해 깨지지 않는 암호개발, 새로운 반도체, 신물질 개발 등 확장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에서 관련 연구는 이제 초기 단계다. 정부와 산학연의 공동 대응으로 차세대 성장분야인 `양자 테크놀로지` 선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한한 적용 분야=양자정보통신기술은 아주 작은 영역,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 단위를 필요에 맞게 제어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자는 몇 가지 고유한 성질을 가진다. 고전 역학에서 설명하기 힘든 중첩, 복제 불가능, 얽힘 상태 유지, 원격전송 특성 등이다. 이런 특성을 활용해 양자암호통신, 양자프로세서, 양자시뮬레이션, 양자 컴퓨터 등 적용할 대상이 많다. 양자정보통신은 기존의 프로세서에서 사용하는 비트 대신에 큐비트(qubit)를 사용한다. 고전 프로세서에서 10비트는 2의 10승, 즉 1024번의 연산을 차례차례 수행하지만 양자프로세서의 10큐비트는 1024번의 연산을 동시에 수행한다. 기존 프로세서에서 100만년 걸릴 연산을 10분 내에 수행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특징을 이용해 연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양자 프로세서에 의한 시뮬레이션은 빠른 연산을 통해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 인터넷 검색,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등에도 쓰일 수 있다. 새로운 반도체 개발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깨지지 않는 암호화 가능=양자암호통신은 1큐비트인 한 개의 광자를 활용해 도청이 불가능한 양자 암호키를 전송하는 기술이다. 가장 먼저 상용화될 아이템으로 꼽힌다. 누군가의 도청이 있을 때 이를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이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 기술은 인터넷이나 정보전달 방법이 어떤 식으로 진화해도 도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국방, 금융, 행정, 의료 망 등에 확실한 보안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에서의 보안 우려까지 확실히 잠재울 수 있다.
양자정보통신기술은 현재 한 개의 광펄스에 한 개의 정보를 실어 보내는 광통신 기술을 광자의 묶음 단위로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향후 페타(10의 15승)급 및 엑사(10의 18승)급의 광통신 속도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현재 광통신의 속도를 100만배 이상 빠르게 만들 수 있다.
◇2020년 30조원 시장=시장조사업체 MRM은 양자정보통신이 2015년에서 2020년까지 연간 10.4%의 성장률로 총 30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광통신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군사적인 수요도 있다. 낙관론자들이 우리나라가 양자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점치는 이유다. 기존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에다 빠른 기술 대응 능력은 우리나라가 가진 강점이다.
하지만 양자기술은 무한한 성장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구체적 사업 성과물이 나타나지 않은 영역이다. 얼마나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지, 얼마나 오랜 연구기간이 필요한지도 뚜렷하지 않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에는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정부주도로 큰 밑그림을 그리고, 단기 요소 기술개발과 함께 사업화 아이템을 찾아가면서 기업들의 관심을 독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양자기술 연구개발은 국내에서 몇몇 연구기관과 일부 기업에서만 제한적으로 진행돼 왔다. 정부의 미래 신기술 지정에다 내년부터 정부 주도의 국책 과제가 진행될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참여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고...양자정보통신기술(QICT)기술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석좌교수. 미 전기전자공학회(IEEE) 펠로우
1988년 내가 막 박사학위를 받고 IBM왓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할 때다. 당시 `양자정보통신(Quantum Information Communication)`에 관한 사내 세미나가 열렸다. 당시는 펜티엄PC는 고사하고 386 PC도 등장하기 전이다. 그럼에도 IBM 연구소는 30년 뒤에야 실용화에 가까워질 신기술에 투자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에야 나는 국내에서 당시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을 통해 비로소 `양자정보처리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양자정보통신기술(QICT)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에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신기술로 꼽히며 정부와 민간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져 왔다. 싱가포르는 2007년부터 10년 계획으로 매년 1300억원을 양자정보통신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1조달러 이상을 관련 연구에 투자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총투자한 금액이 싱가포르가 1년에 투자하는 금액에도 한참 못 미치는 300억원에 불과하다.
왜 여러 국가들이 양자정보통신기술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
완벽한 정보보안이 가장 큰 이유다. 양자 기반 통신망은 해킹에 대해 완벽한 보안성을 제공해 준다. 불과 몇 년 전 농협 전산망이 해킹당해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아시아 금융의 메카를 지향하는 싱가포르가 관련 기술에 전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QICT 기술의 또 다른 장점은 정보처리속도의 비약적 향상이다. 양자역학적인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어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 아니 그 이상의 정보처리 속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이 QICT 기술개발에 소극적인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른바 IT 강국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연구소, 그리고 대학의 IT 관련 연구 인력이나 경영자의 시각에서 보면 기존의 기술로도 충분히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우리나라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휴대폰 강국이다. 하지만, 아직도 퀄컴사에 상당한 로열티를 지급한다. QICT가 다른 나라에서 성숙하면 제2의 퀄컴처럼 우리의 목줄을 쥐게 될 수도 있다.
지경부 전략기획단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10대 IT에 QICT를 포함하고, 방송통신위원회와 SK텔레콤에서 투자를 단행하며 양자통신 네크워크 연구를 시작한 일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21세기 무한 기술경쟁 시대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부와 산학연이 보다 적극적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해외 동향은
이미 주요 국가들이 양자정보통신기술에 R&D 투자를 꾸준히 늘려 왔다. 미국은 2005년 첨단과학기술협의회(ARDA)에서 양자정보통신기술 분야를 5대 중점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09년 백악관 수석 비서관실에서 양자정보통신기술 연방 정부 비전도 선포했다. 국방부 연구기관인 DARPA는 보스턴 지역에 세계 최초의 양자암호통신을 구축했고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은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IBM은 지난 2월 초전도체 기반, 3개의 큐비트를 갖는 양자프로세서 칩을 공개한 바 있다.
유럽은 EU통합 과제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위스의 IDQuantique사는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통신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유럽 표준화기구인 ETSI는 2008년부터 양자암호통신 표준화 기구인 QKD_ISG를 설립한 상태다.
일본은 정보통신연구기구(NICT) 주도로 양자기술 연구를 진행한다. 참여기관은 NTT, 도시바, 미쓰비시, NEC, 후지Wm 등의 산업계 및 도쿄대, 도호쿠대 등이다. 2010년에는 도쿄에 양자암호통신 테스트베드가 구축됐고, NTT는 2014년 상용서비스 제공까지 목표로 내세웠다. 도시바는 양자암호통신 분야 상용화를 위한 장비 개발을 마쳤다.
중국도 `국가 중장기 과학 기술 발전 계획`에 양자정보통신기술을 포함했다. 2010년에 안후이성 허베이시의 정부 네트워크에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지난 2월 베이징 신화통신이 금융 관련 정보의 전송을 위한 양자암호 상용 네트워크를 설치했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국립대학을 통해 연간 1300억원에 달하는 투자로 해외 석학들을 초빙하며 양자정보통신 기술의 강국을 꿈꾸고 있다.
우리나라 양자정보통신 참여 기관과 기업은
IT강국을 표방하지만 우리나라 양자정보통신 분야 대응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 하지만 해외에서도 아직은 구체적 사업화 성과가 뚜렷하지는 않다. 우리나라가 최고의 IT인프라를 활용해 연구개발 속도전에 나선다면 충분히 `양자 강국`에 올라설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의 나노양자정보연구센터(센터장 문성욱)에서 양자정보통신기술을 개발한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고효율의 단일광자검출기술, 양자정보 디바이스 개발, 절대보안통신 솔루션인 양자암호시스템 개발연구, 나노기술 기반의 광전소자 개발연구 및 양자물리를 이용한 큐비트 연구 등이다. 문성욱 박사는 2005년 양자암호통신시스템 기술을 독자 개발한 바 있다. 지난해 말부터 SK텔레콤과 양자암호통신 관련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미래융합기술부의 나노양자연구단(단장 윤완수)에서 나노미터 영역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효과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기술을 연구한다. 양자역학을 이용하면 보다 더 정밀한 센서와 다양한 소자 개발이 가능하다. 이는 다시 정보통신, 바이오헬스 등에 활용된다. 양자측정과학, 나노소자, 나노바이오센서, 양자정보, 나노기계, 저온검출기 등을 연구한다.
◇SK텔레콤=성장기술원 내의 `Quantum Tech. Lab(랩장 곽승환)`에서 양자암호통신, 양자리피터, 양자프로세서 등을 개발한다. 광케이블 상의 양자암호통신뿐 아니라 위성을 통한 양자암호통신 전송 기술도 연구한다. 통신사의 장점을 활용하여 국내의 양자암호통신 시장 및 해외 시장 진출까지 목표로 제시한다. 향후 다(多) 큐비트 기술 확보를 통해 양자프로세서 기술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이 기술은 SK텔레콤의 반도체 기술 및 헬스바이오 기술 향상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