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정보화회의
1997년 10월 15일. 가을볕이 밤송이처럼 따가운 날씨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정보화전략 선언` 1주년을 맞아 제3차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는 고건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역임)와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경부 장관, 16·17·18대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무위원, 시·도지사, 그리고 정계·산업계·학계·언론계 주요 인사 14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는 한마디로 파격, 그 자체였다. 회의 형식이나 진행 방식이 기존 관행을 뒤집었다. 우선 회의장에 `종이와 펜`이 없었다. 참석자 그 누구도 회의장에 펜이나 종이를 지참하고 입장할 수 없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 대통령은 책상 앞에 놓인 데스크톱을 직접 사용하며 3차 보고회의를 주재했다. 김 대통령은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 17인치 모니터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서 연설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보화 사업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므로 낭비 없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인력과 기구 조정, 법과 제도 정비, 그리고 정보화 인력 양성 등이 앞으로 해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은 “최근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도 정보화가 원동력”이라며 “선진 고도 정보사회 건설은 우리 미래의 생존과 직결돼 있는 시대적 과업”이라고 역설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성공적인 지방화를 위해서는 우선 정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정보화는 세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강봉균 정통부 장관은 김 대통령에게 `국가정보화 종합 실적과 향후 추진방안`을 보고했다.
강 장관은 “각 부처의 정보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가속화하기 위해 해당 부처의 업무도 이해하면서 정보기술에 능통한 CIO 제도를 부처별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강 장관은 또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대에 대비해 민간의 자율적인 대응체제를 유도해 나가되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내년에 `전자상거래 기본법`과 `전자자금 이체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관계 법령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회의에 참석한 안병엽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 석좌교수)은 CIO제도의 행정기관 도입 시기를 묻는 김 대통령 질문에 “내년 빠른 시일 내에 관계 법령을 개정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대답했다.
회의에서는 노진식 한국무역정보통신 사장(코엑스 사장 역임, 작고)과 김덕래 특허기술정보센터 소장, 신동오 성문정밀 사장이 무역정보화와 특허정보화, 기업경영정보화 실적과 향후 계획을 차례로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이의근 경북도지사(청와대 행정수석 역임, 작고)로부터 `지역정보화 실적과 향후 계획`을,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인터넷스페이스 타임컨소시엄 대표)으로부터 `선진국 정보기술 혁신과 우리 미래비전`을 보고받았다.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는 1996년 10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사상 첫 회의였다. 회의에는 이수성 국무총리(새마을중앙회장 역임, 현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재단 이사장)와 강봉균 정통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과, 전국 시·도지사, 정계와 재계, 언론계, 학계 주요 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서류와 펜이 없는 새로운 회의 형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청와대는 회의 내용을 디스켓에 담아 배포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정보통신산업을 21세기 주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정보화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보화추진 원칙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전략도 밝혔다.
김 대통령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 △보편적 서비스 △균형과 통합의 정보화 △선별적 정보화 추진 △정보화 역기능 방지 등 5대 원칙을 제시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 전략으로 △정부의 정보화 실천 선도 △경쟁력 제고 핵심 분야의 정보화 우선투자 △산업화 과정상의 문제 해결 △소프트웨어와 영상산업 육성 △정보화 추진기반 정비 △통일 대비 정보화 추진 등 6대 과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회고.
“세계는 이미 지식과 정보의 양과 질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정보화 시대로 진입했다. 이에 따라 수백년에 걸친 산업화 시대의 사회 구조와 삶의 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지난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낙오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우리나라로서는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아 다시는 그 같은 과오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과 각오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또 정보화는 세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보화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세계화의 하드웨어가 구축될 수 없다.”(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중에서)
제2차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는 1997년 5월 2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회의에는 고건 국무총리와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과 15개 시·도지사, 정계 주요인사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올해가 `정보화 본격 추진의 해`가 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의 정보화 추진체계를 재정비하는 데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재임 중 3차례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를 주재했다.
회의는 정부 내 정보화 통합조정과 향후 추진방향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김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며 정보화 업무를 직접 챙기자 정보화는 국정 최우선 과제로 등장했고 전자정부도 빠르게 추진했다.
김 대통령은 언제 이런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 설치를 구상했는가.
김 대통령은 1996년 2월 24일부터 29일까지 인도와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3월 1일부터 이틀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SEM)에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27일 싱가포르에 도착, 옹텡청 싱가포르 대통령과 고촉통 총리, 리콴유 전 총리와 만나 양국 간 통신과 전자, 정보통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키로 했다.
김 대통령은 28일 오전 싱가포르 해운항만청과 컨테이너 터미널을 시찰했다.
당시 싱가포르 컨테이너 터미널은 연간 10만척이 드나들어 선박 수에서 세계 1위였다. 컨테이너 물량은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모든 물류과정을 첨단 컴퓨터로 처리해 업무 효율성이 높았다.
김 대통령은 이 같은 첨단 시설을 돌아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보화 현장에서 받은 충격은 컸다.
김 대통령의 회고.
“대규모 물류 이동이 최첨단 컴퓨터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 설치를 제안한 이각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 역임, 현 KAIST교수, 한국미래연구원장)의 증언.
“김 대통령이 시찰한 항만시설은 첨단시설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김 대통령은 시설을 둘러본 후 정보화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결단하면 즉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입니다. 윤여준 청와대 공보수석(환경부 장관 역임, 현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을 불러 귀국 인사말에 `정보화를 포함시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3월 4일 오후 해외 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김 대통령은 귀국 인사말을 통해 “세계가 무서운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와 정보화를 더욱 힘차게 추진해 국력을 키워 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21세기 일류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전폭적인 성의와 참여를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각범 수석이 귀국 후 김 대통령에게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 설치를 건의하자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이 수석의 건의를 즉각 수용했다. 그러나 업무조율이 순탄하지 않았다.
이각범 수석의 말.
“김 대통령께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겠다고 말씀드려 재가를 받았어요. 그러자 경제수석실에서 난리가 났어요. 그동안 정보화는 경제수석실에서 관장했어요. 구본영 경제수석(과기처 장관 역임, 작고)이 강력히 반발했어요.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초고속망 등 정보화 업무도 관장하겠다`고 했더니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이 `정통부에서 초고속망 업무를 안하면 과거 체신부와 다른 게 뭐냐`며 반대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은 내부 논의를 거쳐 그해 5월 14일 대통령 비서설 기능조정을 통해 정보화 업무를 분리했다. 경제수석실에 1급인 정보통신비서관을, 정책기획수석실에 정책4비서관을 신설했다. 정책기획수석실 정책4비서관은 정보화추진 확대 및 보고회의 운영과 정보화 추진위원회 업무, 장기과제 발굴 관리 등을 맡기로 했다. 경제수석실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산업과 관련한 정보통신업무만 담당하기로 조정했다.
김 대통령은 그해 5월 1일 오전 청와대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앞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정보화추진확대회의`를 설치해 부문별 정보화가 잘 추진되고 있는지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이각범 수석의 이어지는 회고.
“회의는 정책기획수석이 주관하되 주제는 정통부 장관과 협의해 결정했습니다. 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자정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어요.”
안병엽 정통부 실장의 말.
“주제는 정책기획수석실과 협의해 결정했고 실무준비는 정통부에서 했습니다. 수시로 업무를 조율했습니다. 그 당시 `종이 없는 회의`는 관행을 파괴한 창조적인 혁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회의는 1997년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문민정부에서는 더 이상 열리지 못했다. 3차 회의가 마지막이었다. 김 대통령의 정보화 의지는 강력했다. 정부가 추진한 국가 정보화는 ICT강국의 디딤돌이 됐고 전자정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