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흑백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이분법의 세계가 아니라 흑과 백 사이에 무수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회색지대(gray zone)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회색지대 삶은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불확실한 세상이다. 회색지대는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며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우발적인 세상이다. 우발적인 것은 창발성(emergence)의 원천이다.
창발성은 시행착오와 고뇌 끝에 창조적으로 우연히 발상이 일어나는 가능성이다.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우연한 관계에서 놀라운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그 상호작용의 결과 전대미문의 예기치 않은 창조의 스파크가 튄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숱한 고뇌와 실험 끝에 실패했지만, 그 실패의 뒤안길에서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삶은 수많은 우연의 합작품이고 불확실성과 함께 노는 한 판의 춤이다. 미래가 불확실해야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려는 전력투구의 노력이 따른다. 내일은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 우연히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에 오늘이 즐겁고 신나는 것이다.
우연은 계획 속에 있지 않다. 우연은 계획 밖에서 기다리다 마주칠 뿐이다. 삶은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마주침으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경이로운 신천지가 열리는 것이며, 기대를 망가뜨리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우연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우연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라. 세상은 우연의 경연장이며, 우연히 마주치는 꿈의 무대다.
너무 일찍부터 어떤 춤을 어떤 방법으로 출 것인지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멋진 다른 춤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꿈속의 우연이 현실로 다가오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우연으로 하여금 삶을 이끌어가도록 우연과 함께 우연히 춤을 추는 수밖에 없다.
인연은 우연히 시작되지만 우연히 시작된 인연이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필연도 우연히 낳은 자식이다.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우연의 반복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필연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우연한 인연은 시간이 흐르면서 필연적인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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