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이 여러 부처로 산재되면서 국가 정보화에도 거버넌스 문제가 대두됐다. 특히 기관별로 분산 추진되는 국가정보화 조정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를 위해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데 한계가 많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 ICT 거버넌스 모델 가운데 하나로 현행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기능을 강화하자는 안도 소수 의견이지만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국가정보화기본법을 근거로 지난 2008년 분산된 정보화 기능을 조정하고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대통령 소속으로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위촉한 민간위원장이 공동으로 이끈다. 산하에는 국가정보화전략실무위원회를 두고 있다.
◇전략위 위상 강회된 만큼 역할 수행 못해=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소속으로 격상, 위상을 강화했다. 소속위원도 25명으로 증원하고 민간전문가 참여를 확대했다.
ICT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로 분산되면서 나타나는 난맥상을 조정해보자는 취지였다. 부처 위에 상위 거버넌스 체계를 두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높아진 위상만큼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위상은 높아졌지만 각 정부부처를 조정할 리더십이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개최 횟수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전자정부특별위원회는 김대중 정부에서 월평균 2.6회, 노무현 정부에서는 월 2.1회 위원회를 개최했다. 반면에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0.6회에 불과했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심의한 안건도 대부분이 단순 보고 안건에 그쳤다. 2009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심의한 146건 중 대부분이 2010년 및 2011년 기관별 국가정보화시행계획안 보고였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지만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채널도 불분명했다. 상정 안건의 효율적 심의를 위해 부처 차관급으로 운영협의회도 구성할 수 있지만, 각 부처에서 적극 응하지 않았다.
◇예산권·평가권 강화 못하면 `종이호랑이`=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강화안은 이 때문에 MB 정부의 분산 ICT 거버넌스 체계가 유지될 경우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분산 거버넌스의 폐해를 상위 조직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강화하자는 개념이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를 강화하는 안의 핵심은 예산권·평가권·조직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상위 조정기구가 있어도 각 부처를 움직일 명분과 권한이 미약한 현재 구조로서는 안 된다는 평가 때문이다.
현재 각 부처는 정보화전략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대부분 정보화 사업을 기획,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예산을 수립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보화전략위원회보다 오히려 기획재정부가 정부 정보화 사업의 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셈이다. 매년 빚어지는 정보화 예산 축소와 예산심의의 전문성 부족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예산권을 통째로 넘기지 않더라도 일부 이관하는 것도 방안이다. 현재 500억원이 넘는 국가정보화 사업에는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의 정책적 의의와 경제성을 판단하고 이를 위해 사전 검토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경제성 분석과 정책성 분석으로 나눠 진행한다. 이 중 정책적 분석 권한을 정보화전략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정보화 관련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담당하면 각 부처는 사업을 실시할 때 의무적으로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조사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각 부처의 정보화 관련 사업 추진 계획과 필요 예산 정보를 가지게 된다. 부처 간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사업을 파악해 조정할 수 있다. 모든 정보화 관련 사업의 재정계획 조사를 실시, 예산권을 통한 사업 통제도 가능하다. 이는 정보화 사업 조사와 예산권 연계라는 점에서 평가권과도 연관이 있다.
평가권은 사업과 예산 사용의 심의와 평가를 수행하는 권한이다. 기관별 정보화 관련 시행계획 및 정책을 검토, 심의한다. 정보화 정책에 대한 총투자 비용 및 성과파악으로 일관성있는 투자성과 관리가 가능하다. 사후평가에서는 정책 및 관련 계획의 사후성과를 평가해 정책 수립에 반영한다.
예산권과 평가권이 주어지면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그나마 분산 거버넌스의 중복투자·국가 정보화 어젠다 부재 등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조직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처 간 갈등이 있거나 조정이 어려운 사업은 관련 기관의 인사들을 모아 일시적인 조직 구성으로 업무의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매트릭스 조직이 하나의 예다. 둘 이상의 부서와 관련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프로젝트형 임시조직 형태가 적합하다. 공동 상급자가 둘 이상의 조직으로부터 파견된 중간관리자들을 간리 감독하면서 하위조직원들을 공유해 업무 처리에 활용하는 조직이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에 조직권과 조정권을 부여하면 둘 이상의 부처가 서로 갈등하거나 경쟁하는 업무에 대해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부처를 주관부처로 정하고 지정된 주관부처 담당자는 다수 부처에서 추천받은 중간관리자들을 직접 통제해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도 고려할 만하다.
◇부처 간 조정 기능 여전히 회의적=예산권·평가권·조직권까지 가져오면 전략위원회는 강력한 거버넌스 기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부처에서는 너무 이상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당장 예산권과 평가권을 기획재정부가 넘겨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조직권도 행안부가 기득권을 놓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국가정보화전략위 강화안이 실행되려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략위원장이 IT수석을 겸하는 등 청와대 중심의 강력한 거버넌스가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부처 간 알력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져 전략위원회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