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직업선택의 자유도 막는 `괘씸죄`

중견 전자 업체에 근무하던 정 모씨는 조직과 사내 문화에 회의를 느껴 입사 4년 차에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고 얼마 안 돼 다시 전자 업계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간 곳은 동종 업계 다른 기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법원에서 통지서 한 장이 날아왔다. 전 회사에서 제기한 전직금지 및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이었다.

황당했다. 4년간 업무에서 영업비밀이란 건 들어 본 적도 다룬 적도 없었다. 외부로 반출한 종이 한 장 없었다. 퇴사 후 경쟁 업체로 이직하지 않는다는 서약서에 사인은 했지만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꿈에도 몰랐다. 입사를 위해 당연히 써야 하는 형식적, 의례적 절차로만 생각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너무 억울했다. 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법원에서 정씨의 손이 올라갔다. 법원은 그가 전 직장에서 다룬 일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직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냈다.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그런데도 전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꼬박 2년이 지나서야 허무한 싸움은 마침표를 찍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정씨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퇴사 후 다른 직원들도 이직이 잦았다고 한다. 본보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산업계가 인력이동 문제로 시끄럽다. 기업이 필요한 사람을 영입하거나 사람들이 이직하는 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사법 판단에 넘어간 사안도 있고 잠재적 조짐도 보인다. 과거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이런 문제가 빈번했다면 최근엔 대기업 간에도 심상치 않다.

잘잘못은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잘못이 드러나면 합당한 처벌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갈등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면 문제다. 정씨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를 낳아선 안 될 일이다. 개인에게 상처를 깊고 치명적으로 새겼다며 만족할지 모르겠다. 소기의 목적을 충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제와 압박은 기업이 그토록 강조하고 중시하는 인재 양성의 해답이 아니다. 이런 우려가 기자의 기우로 그치길 바란다.


윤건일 소재부품산업부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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