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그동안 대(對) 중국 수출이 50배로 늘어나는 등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졌지만 아직까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성공모델을 찾아보기 힘들다.
원인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아직도 우리 기업 중에는 중국을 `저임금 하청 생산기지`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 중국 시장을 핵심 승부처로 생각하는 기업도 전략과 전술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기업이 혼란을 겪는 동안 중국 IT기업은 급성장하는 내수에 힘입어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쌓아왔다. 이제는 탄탄한 수요와 자본력을 무기로 한국을 포함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더 큰 성장을 통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IT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다.
전자신문은 우리 IT기업과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방한한 중국 IT 대표기업 경영진을 초청해 양국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지난 22~23일 지식경제부와 KOTRA가 개최한 `차이나 IT 프리미어 2012`에도 참석했다. 좌담회는 22일 JW메리어트호텔에서 진행됐다.
*참석자 (가나다순)
(중국)
궈이동 ZTE 부사장
리우제 디지털차이나홀딩스 총경리
리우찰리 소니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 CTO
쟝홍루이 화웨이디바이스 이사
첸신중 뉴소프트 총경리
후셔우쥔 CEC판다LCD테크놀로지 부장
(한국)
박진형 KOTRA 중국지역본부장
(사회)
정지연 전자신문 국제부장
◇사회(정지연 전자신문 국제부장)=중국 IT기업이 급성장해 세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서 중국 IT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이고 그 가운데 한국과의 협력이 왜 필요한지, 어떤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지부터 얘기해보자.
◇쟝홍루이(화웨이디바이스 이사)=화웨이는 네트워크 장비를 주력으로 클라우드와 전자 단말기 등 종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네트워크 장비 분야에서는 지난해 세계 2위로 부상했으며 올해는 에릭슨을 추월해 선두권으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목표가 해외 시장 진출 확대다.
한국 기업과 협력할 분야도 바로 `시장 개척`이다. 개척할 시장 중에 한국도 포함된다. 그동안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많이 진출했지만 앞으로는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도 많이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양국 기업이 협력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돼야할 것이다.
한국에는 우수한 IT기업이 많다. 그 이면에는 뛰어난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원의 활용이 필요한데 한국 기업이 구축한 서플라이체인이 유력한 협력 분야로 생각된다.
◇궈이동(ZTE 부사장)=서플라이체인에 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덧붙여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성공 노하우`도 포함시키고 싶다. 한국 기업은 그동안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성공 신화를 썼다. 품질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우수하고 브랜드도 크게 알렸다. 삼성이 대표적이다. 예전에 KOTRA에 한국 기업의 글로벌 성공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제안한 적도 있다.
인재·시장·자본 육성 등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을 벤치마크하고 싶다. 이번 방한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중국 기업 중에 PC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레노버는 인수합병 방식으로 규모를 키우지만 ZTE는 지식재산권 확보를 통해 회사를 발전시킨다. 한국 기업과 성향이 비슷해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리우찰리(소니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 CTO)=소니모바일은 올해 초 소니에릭슨에서 사명을 변경하면서 일본 소니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소니는 글로벌 기업이고 계열사들이 다양한 분야에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한국 기업과 협력할 분야도 많다. 회사 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개방식 이노베이션(혁신)`이다. 한국 기업의 이노베이션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 틀 안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힘을 합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박진형(KOTRA 중국지역본부장)=시장 확대 측면에서 협력 모델 구축은 중국 내수 시장과 해외 시장 진출로 구분해 효과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한국기업은 중국 유력 기업들과 함께 중국 내수시장 진출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마케팅이다. 생산력도 강하고 기술도 좋지만 중국 시장 판로를 개척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중국 기업과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중국은 최근 들어 ICT 분야나 스마트 신도시 등이 개발되면서 수요가 많은데 한국 기업 단독 진입은 어렵다. 보이지 않는 장벽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문제는 중국 기업이 해결해줘야 한다. 그동안은 중국에 투자 일변도였으나 앞으로는 중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해줘야한다.
해외 진출 확대도 좋은 협력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 기업은 해외 시장 개척의 교두보를 한국으로 삼는 게 유리하다. 한국은 FTA 체결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어 중국 기업이 우선 한국에 투자한 이후 미국과 유럽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다.
◇사회=한국 기업들과 협력이 가능한 부문 중에는 소프트웨어나 전자정부, IT서비스 분야도 유력하다. 관련 전문 업체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첸신중(뉴소프트 총경리)=다방면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소프트는 중국 최대 IT서비스와 SW아웃소싱 업체로 일본 등에 지사를 설립하고 해외 시장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한국 방문 목적은 차량용 전자설비 분야 사업을 위한 협력 체결이다. 현재 중국 유력 자동차업체의 차량용 전자설비 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련 분야 전문업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 이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SW아웃소싱 분야도 함께 포함되며 한국의 우수 솔루션이 있다면 뉴소프트의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리우제(디지털차이나홀딩스 총경리)=디지털차이나는 지난 2000년에 레노버에서 독립한 IT서비스 업체로 이미 도시 교통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손을 잡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중국의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과 스마트시티 관련 통합 솔루션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기대한다.
◇사회=그동안 한중 기업 간 협력 모델은 한국에서 만든 부품을 공급하고 중국에서 세트 제품을 조립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세트 가격 하락으로 이 같은 모델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앞으로 LCD TV를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한국에서 생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양국 기업이 전자생산을 위한 협력을 이어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후셔우쥔(CEC판다LCD테크놀로지 부장)=LCD 패널 전문업체로서 한국 소재기업과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일본 업체를 통해 조달하고 있는데 규모가 크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최대 LCD 패널 업체가 있어 소재 기업도 제작 능력이 뛰어나다.
세계 LCD 패널 시장은 한국과 일본, 대만 기업이 주류다. 중국 기업은 후발 주자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 진출이 뒤늦어 아직까지는 배우는 단계라 국제적 협력이 절실하다.
문제는 가격 하락이다. 선두권인 삼성과 LG가 LCD TV 생산을 줄이면 전 세계 패널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 한국과 대만 업체뿐만 아니라 중국 업체도 가격 하락으로 손해가 많아진다. 이 부분에서 협력이 필요한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민감한 주제로 넘어가보자. 시장 현황을 보면 대기업과 영세 기업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중견기업은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다. 중국 기업과 힘을 합치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기업 간 협력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기업이 많다. 지적재산권 보호나 경영권 보호, 투자 지원 등 한국 기업이 신뢰를 갖고 중국 기업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박진형=한국 벤처나 중견기업이 중국 진출을 희망하지만 기술 노출이나 카피를 우려한다.
중국 이통사와 협력해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기술 유출을 우려해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이 크고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중국 진출은 필수다. 하지만 위축된 마인드로 중국 진출을 우려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중국 시장에 대해 제대로 준비를 한 다음에 진출해야 실패를 하지 않는다. 무조건 두려워만해서는 안 된다. 중국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쟝홍루이=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위해서는 `생존과 협력`이 필요하다. 중견 기업이 생존을 위해서는 문제점부터 파악해야 한다. 시장 수요가 부족한 게 문제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어려운 것인지를 판단해야한다. 수요가 부족하다면 중국과 같은 시장에 진출해야한다. 만약 능력이 떨어진다면 노력해서 경쟁력을 갖춰야할 것이다.
글로벌 시각에서 본다면 ICT 분야에서 한국 중견기업은 기회가 많다고 본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협력해야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30년이 흘렀다. 지식재산권 문제는 이전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었으나 이제는 많이 발전했다. ZTE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출원을 한 기업이다. 중국 성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증거다. 중국 사회 전체가 IP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중국에 진출할 때 지적재산권 문제로 분쟁이 생겨도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중국은 상당히 큰 생태계에 속한다.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 개척에 용기있게 나선다면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우찰리=기술 유출이나 카피 제품과 같이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나타난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일하게 나타났었다. 명동 거리에 나가보니 아직도 짝퉁 제품이 많이 있더라.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이를 두려워해 위축되면 안 된다고 본다. 세균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더 넓은 범위에서 보면 기업 간 결합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이 있다. 소니모바일뿐만 아니라 삼성 등도 중국에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고 있다. 현지 R&D는 현지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첸신중=중국은 시장도 있고 자원도 있다. 얼마 전 재방영된 영화 타이타닉의 전 세계 티켓 중 60%가 중국에서 판매됐다.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나타내는 사례다. 뉴소프트는 중국 지식재산권의 정보 통합서비스를 맡고 있는데 이미 등록 건수가 미국을 넘어서 세계 1위 수준이다. 한국 기업이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 없다.
◇사회=한·중 협력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그 대표 사례를 만들어내는데 참석한 여러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과 같은 간담회도 양국 간 좋은 협력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겠다. 좋은 의견 감사하다.
정리=서동규 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