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전력예비율이 7%대(전체 공급능력 6378만㎾, 운영예비력 442만㎾)로 급락했다. 반짝 더위 때문이다. 무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력예비율이 10% 이하(운영예비력 500만㎾ 이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정부와 전력업계는 초비상이다. 전력위기 경보체계 초기인 `준비단계`에 돌입했다. 올해는 일러도 너무 일렀다.
동·하계 전력피크를 매년 반복하지만 정부 대책은 늘 같다. 전국 발전소 계통 투입과 전기절약을 호소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장 운영의 기본 요건인 요금을 원가 이하로 붙잡아 놓고 국민에게 값싼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급하다. 여기서 생긴 여력을 전력생산 설비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도 정립해야 한다. 전력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살피고, 국민이 수용 가능한 전기요금 인상 폭, 효율적인 에너지 투자 확대방안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분석한다.
역대 정전사고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2003년 발생한 미국 북동부 지역 대정전 사고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에서 일어났다. 40시간 정전에 따른 경제손실은 무려 100억달러 이상에 이른다. 전력 안정성이 인프라와 시스템이 아닌 관리와 운영에 달렸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미국 북동부 사례를 빗대어 보면 한국 전력시장은 그야말로 약골이다. IT와 전력의 융합으로 손색없는 설비와 계통시스템을 갖췄다지만 시장 근간인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로 판매된다. 수요가 공급을 넘었다. 설비 개선을 위한 자본구조도 취약하다.
원가 이하 전기요금에 따른 전기 과소비와 시장경제 약화는 이제 국가적 위기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최하위권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h당 0.083달러다. OECD 국가 평균 0.156달러보다 0.073달러 저렴하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h당 0.049달러 싸다.
전기 과소비는 다가올 여름철 전력피크 위기의 목줄을 당긴다. 지하철·상가·업무시설 등은 벌써부터 냉방기를 가동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가보상률 87%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인 전기를 아껴 쓸 이유가 없다. 생산현장에선 유지비가 비싼 기존 유류가동 설비를 전기설비로 대체한다. 전력업계는 최근 주요 발전시설들이 사고로 가동을 멈추고 정비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전기 소비패턴은 9·15 순환정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노후 전력설비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국가 전체로 유효수명을 넘긴 노후 전력설비가 수두룩하다. 이를 관리하는 한국전력은 재무구조 악화로 손쓰기가 버거운 실정이다.
한전의 지난해 부채는 50조원, 부채비율은 113%다. 2007년 부채 22조원, 부채비율 49%에서 불과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 사이 전기요금은 15% 올랐다. 하지만 발전연료비는 41%나 상승했다. 한국전력은 한 해 벌어 부채 상환은커녕 추가로 발생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한다. 또 다시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전력설비 유지보수와 노후설비 교체 비용을 차입을 통해 해결하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승훈 서울대 교수는 “한전이 지난주 전기요금 13%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지금까지의 연료비 인상분과 설비 유지보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이도 부족해 보인다”며 “원가 이하 전기요금 손실분이 다른 곳의 취약점으로 전가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절전규제와 같은 일시적 방편이 아닌 전력산업 안정화를 위한 요금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OECD 국가 전기요금 수준 비교(한국이 100일 때 국가별 수준)
자료:한국전력공사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