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극강(柔能克强)`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말이다. 30년간 IT 분야에서 한우물만 고집한 김병일 한전KDN 사장의 개방적 사고와 유연함은 딱딱한 공기업 이미지를 단 6개월만에 창조적인 소통이 오고가는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유연함은 열린경영으로 이어진다. 취임과 동시에 가장 먼저 강릉을 제외한 전국지사를 돌며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직접 청취한 그다. 한전KDN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개선점 정리를 끝낸 김 사장은 향후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경쟁을 통한 성장`을 꼽았다.
김 사장은 전력공기업임에도 ICT 서비스를 넘어 민간기업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전력IT 융복합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오는 20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변화와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한전KDN 본사에서 김병일 사장을 만났다.
◇전력IT 국산화 마에스트로의 희망=“한전KDN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전력IT 특화사업입니다. 지금 대다수의 전력계통 부품과 장비가 지멘스·ABB같은 외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산화하고 그 과정에서 협력 중소기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사업 전환점을 묻는 질문에 김 사장의 첫마디는 `전력IT기기의 국산화`였다. 한전KDN이 20년간 한국전력 이하 전력그룹사 부문에서 ICT 서비스를 도맡으며 전문성을 키워왔지만 오히려 한 분야에 치중된 전문성은 무한 경쟁시대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다.
그가 말하는 전력IT 설비 국산화는 다시 세계화로 이어진다. 전력설비의 밑단인 배전·변전 분야 등에서 경쟁력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해 국내 IT의 세계화를 이끈다는 큰 그림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이다.
“전력IT 국산화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협력사는 제품을 개발하고 한전KDN은 전체적인 전략과 테스트, 기술표준 등에 주력하는 상호 보완이 필요합니다.” 전력과 IT융합의 컨트롤타워, 협력사들이 `전력IT`라는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한전KDN은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는 지휘자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도 같은 맥락이다. 스마트미터·원격검침인프라(AMI)·데이터집중장치(DCU) 등 기본적인 장비에서부터 협력사들과 경쟁력을 키워간다는 전략이다.
김 사장은 전력IT 설비의 세계화가 국내 전력서비스 안정으로 되돌아온다고 보고 있다. 그는 “많은 전력설비들이 노후화돼 있는 상태”라며 “이를 교체하는 데 있어 국산제품이 활용되는 것은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간기업과의 사업경쟁 `도전장`=회사의 약점에 대해 언급하는 김 사장의 눈은 냉정했다. 제3자의 시점에서 회사를 평가했다. 그는 유연성 부족에 따른 시장적응 한계와 뒤처지는 신기술 적용이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으로 그리고 한전 자회사로 전력산업에 집중하다보니 민간 IT서비스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진단이다.
김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조직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지금은 고급인력 교육, 신기술 습득 속도가 다른 공기업보다 빨라야 민간 SI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김 사장이 민간기업과의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한전KDN의 기반이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IT산업이기 때문이다.
“IT는 경쟁을 하지 않으면 뒤처지기 마련입니다. 사실상 민간기업과 다를 바 없는 입장에서 공기업이지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지요.”
경쟁력 확보의 키포인트는 인재 양성이다. 직원 모두가 공기업 사원이 아닌 IT기업 IT맨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기조다. 지금은 ICT 서비스 분야에서 민간기업 대비 다소 열세에 있지만 ICT 전문 인력 채용과 양성을 병행하고 급변하는 기술에 적응하는 기업 체질을 갖춘다면 충분히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시장 개척은 전력그룹사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국가 인프라 산업이라는 전력분야 특성상 IT융합 서비스 진출이 어려움이 있는 만큼 한국전력과 발전회사들의 해외사업에 응용IT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동반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전력IT 첨단제품을 통해 현지화 작업만 충실히 한다면 2~3년 안에 시장 개척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수 출신이 아닌 IT사업가로 승부=동덕여대 부총장을 역임하다 한전KDN 수장을 맡게 된 김 사장이지만 교수보다는 경영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가 창의적인 문화를 주문한 것도 학교 특유의 자유분방함 투영이 아닌 IT기업다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이었다. “IT기업은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이 모여 이끌어가야 한다”는 그의 원칙을 실행하는 수순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신기술을 습득하라` `경험을 축적하고 빨리 배워 뒤처지지 마라`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회사의 흥망을 좌우한다`
김 사장이 한전KDN을 이끈 지난 6개월 동안 수차례 강조한 말이다. 임기 동안 공기업의 수동적인 문화는 반드시 바꿔놓겠다는 의지다.
김 사장은 “IT기업은 시간이 흐르고 기계가 돌아가면 자동적으로 제품이 나오는 제조업과 달리 사람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곳”이라며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혁신적인 전력IT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전력서비스를 뒤에서 지원하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사장은
김병일 사장은 1956년 서울에서 출생해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79년 서울대학교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서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IT계에 입문했다.
1981년 대우중공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업무와 IT를 이용한 공장자동화 업무를 수행했으며 1989년 런던대학 임페리얼 컬리지 컴퓨팅학과에서 인공지능 분야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덕여자대학교 컴퓨터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 교육과 학교행정을 수행해 왔으며 현대정보기술 사외이사 등 정보통신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왔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이사,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해 3월부터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첨단융복합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 정보통신산업과 IT융합산업 기술발전에 참여하고 있다.
한전KDN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내 창의문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취임 직후 임직원 간 소통 확대를 위해 15층 임원실을 리모델링, 사원들을 위한 공간인 북카페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금은 점심시간 때면 북카페에서 임원과 직원이 함께 어울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회의도 진행만할 뿐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참석자들이 문제를 제시하고 서로 토론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유도한다.
상하관계의 벽을 허무는 경영 덕에 김 사장은 직원들에게 옆집 아저씨와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최근에는 비정규직 비율 축소와 재취업 주부를 위한 인력관리시스템 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소박스/ 녹색산업과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먹거리 찾는다.
한전KDN의 올해 목표는 녹색성장 사업과 해외 진출을 중심으로 한 경영체질 변화로 압축된다. 지금까지 국내 전력산업에 IT 접목이 주요 임무였다면 이제는 녹색산업과 해외시장 개척에 역량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경영목표도 5100억원 매출과 433억원 영업이익 달성으로 정하고 이중 녹색산업과 해외시장 부문에 각각 571억원과 424억원의 매출을 설정했다.
이를 위해 한전KDN은 △사업영역 확장 △핵심고객 및 솔루션 확보 △사업경쟁력 제고 △연구개발 기술력 향상 △사업지원 강화의 5대 중기 경영목표를 수립했다.
사업영역 확장의 우선과제는 해외시장 발굴이다. 신규 사업을 지속 발굴해 국내 시장에선 기반 산업 경쟁력을 튼튼히 하고 해외 주요 시장마다 거점을 확보해 진출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전력 그룹사 차원의 동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수립하는 등 다각화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기반산업 경쟁력을 위해선 핵심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전력IT 주요 솔루션 확보와 신기술 개발로 향후 연 매출 50억원 이상의 핵심고객을 점차 늘려간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적기에 선보여 사업전략이 원활히 이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업무 프로세스도 대폭 개선한다. 기존 고객들에 대한 전력IT 서비스 운영역량 강화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사내 분위기 혁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문 인재 양성과 창의적인 기업문화 조성이 그 핵심이다. 이를 통해 `국내 유일의 전력IT 전문기업` 위상을 재정립한다는 포부다.
녹색산업 부문은 자체 보유기술 인증 취득에 속도를 가해 녹색성장 기반을 조성하고 대내외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방침이다.
대담=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정리=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