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연구개발(R&D)로 좋은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상용화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운 좋게도 이 기술이 다시 빛을 보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요행수를 바랄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으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R&D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단순히 선진국을 따라 잡는 것을 넘어 R&D를 통해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국민 모두의 열망이 `한강의 기적`으로 발현된 셈이다.
이런 기조는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된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한 가치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R&D투자는 OECD국가 중 투자규모 7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 3위를 기록하는 등 양적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국가 R&D 시스템이 시장과 점차 괴리되고 있는 점은 고질적인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된R&D 프로젝트로 수많은 논문·특허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산업화되거나 제품으로 나오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R&D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국가 전략 자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셈이다.
필요에 의해 R&D가 진행되고 사업화 단계까지 진척되던 선순환 고리가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의훈 KAIST 교수는 “R&D 프로젝트로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하고, 그 수익을 또 다른 R%D 사업에 투자하는 사업화연계기술개발사업(R&BD)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면서 “R&D 기획 단계부터 사업화 부문을 같이 고민한다면 개발된 기술이 아깝게 사장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R&D 사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과감하게 메스를 대고 있다. R&D 기획 단계부터 권한을 민간에 대폭 이양해 시장 수요와 시각차를 줄이고, 사업화 단계까지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제4차 기술이전·사업화 촉진계획`에는 지식 기반 경제에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가치창출형 R&BD에 대한 정수가 담겨 있다.
지경부는 R&D 사전 기획비를 확대하고, 창의 비즈니스모델 공모사업 등을 신설해 R&D 사업의 질을 높인다. 정부 R&D 지원금 출연 시 기술보증기금 보증 평가와 연계하는 R&D 프로젝트 금융지원 제도도 최초로 도입한다.
전문적인 기술 이전·사업화 중개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의 창조적이고 도전적으로 R&D 개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공공기관 기술이전조직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기획·투자 등 사업화 전주기 차원에서 지원하는 전문 기업도 육성키로 했다.
기술료 인센티브 조정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나선다. 2000억원 규모의 IP비즈니스펀드뿐 아니라 R&BD펀드·대덕특구펀드 등 신규 자금도 조성할 방침이다. 기술사업화 전문 인력 양성과 사업화 예산을 확충해 기술과 시장의 선순환 토대를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사업화 예산을 R&D 자금의 3% 수준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술이전·사업화 정책은 기술개발 및 기업성장촉진 정책의 중간영역으로 추진되다가 2000년 기술이전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빚을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술이전·사업화 정책은 기술시장 조성→기반확충→전주기 지원 시스템 구축 등의 순서로 진행돼 왔다. 올해부터 2014년까지 진행되는 제4차 사업은 수요자 중심 기술사업화 생태계를 조성해 시장에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개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중장기 사업 추진 프로세스도 전면 쇄신한다. 국내 중장기 기술개발사업의 경쟁률은 1.27대 1 수준에 불과하다. 2004~2008년에 실시된 6310건의 단계 평가대상 과제 중 중단된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최종 평가에서 실패 판정을 받은 과제는 2.1%에 불과해 과제 수행자로 뽑히면 사실상 끝까지 정부 지원이 보장되는 식으로 운영된 셈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책 과제 담당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DARPA)는 해마다 평균 20% 프로젝트를 탈락시키고, 최종적으로 진행하는 과제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DARPA를 벤치마킹해 평가·관리 과정에 경쟁과 중간탈락을 대폭 확대하는 경쟁 R&D 시스템을 도입한다. 대신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도입해 창의적이고 실패 위험이 높은 과제도 도전하도록 했다.
소재부품 업계 관계자는 “정부 R&D 자금이 `눈 먼 돈`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원 업체가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업화 단계까지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R&D 개발 사업이 사업화뿐 아니라 수출까지 이어지도록 돕는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