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영업전산망 주 5일제 `도둑`만 키웠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이동전화 번호이동자 수 추이최근 휴대폰 유통가에선 `도둑 감별법`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다.
주말에 와서 포장을 뜯지 않은 공단말기를 달라고 하는 구매자나 다른 판매점에서 구입한 단말기를 들고 또 개통하러 오는 손님이 대표적인 `위험 인물`로 꼽힌다.
지난달 전산망이 열리지 않아 확인할 수 없는 주말을 노려 판매점을 돌며 가짜 신분증과 계좌번호로 휴대폰 12대를 훔친 `주말 개통녀` 사건 이후부터다.
한 판매상은 “사기를 당해 생돈 수십만원을 날리는 것보단 차라리 손님을 놓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이동통신사 영업전산망에 주 5일제를 도입한 뒤 나타난 신 풍속도다.
과열된 번호이동 시장을 줄이고 대리점·판매점 근무자 휴일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이통사 영업전산망 `주 5일제`가 오히려 실이 더 크다는 비판이 높다.
영업전산망이 가동되지 않는 토요일엔 구매자 신원 확인이 안 된다. 이 허점을 악용한 휴대폰 절도사건이 터지면서 불만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주말 개통녀 사건과 같은 사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구매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토·일요일에 판매한 물량은 월요일 오전 한꺼번에 개통 작업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전산망이 `먹통`되는 일이 빈번하다. 다음날까지 개통이 미뤄지는 날도 많다. 구매자 입장에선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월요일 전산망이 열리는 오전에는 개통 전쟁이 벌어진다”며 “이통 3사 모두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전산망이 다운된다”고 말했다.
기기 사용에 익숙치 않은 구매자가 주말에 단말기를 구입했을 때 개통 후인 주중 다시 매장을 재방문해 설명을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임대폰 개통 등에도 주말을 넘겨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반면에 당초 제도도입 취지인 시장 안정화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주 5일제가 시작된 7월에는 시장 과열 여부를 가리는 지표인 번호이동자 수가 98만2000여명으로 전월보다 감소해 `반짝 효과`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11월 113만5000여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과도한 마케팅 출혈경쟁과 휴대폰 자원낭비를 방지하겠다는 원래 목적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전산망 내리고 대리점 문 닫아 시장 과열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눈치보기`식 영업이 기승을 부린다. 지난 2월 LG유플러스가 전산망이 열리지 않은 채로 대리점 영업을 강화해 가입자를 늘리자 SK텔레콤과 KT가 자사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전산시스템을 슬쩍 열어 기기변경 업무를 진행하기도 했다.
SK텔레콤과 KT는 이 때문에 도입 취지가 퇴색된 제도를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과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조속히 이통 3사 합의로 다시 전산망 운용을 재개하는 것이 맞지만 아직 방송통신위원회뿐만 아니라 3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자 수 추이(단위:명·자료:방송통신위원회)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