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CEO]이서규 픽셀플러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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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말해준다. 픽셀플러스가 얼마나 드라마틱한 성장통을 겪었는지.

2000년 창업한 픽셀플러스의 2005년 매출은 389억원. 그 힘으로 반도체설계전문(팹리스) 역사상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기쁨은 잠시였다. 각종 악재가 겹치더니 3년 만에 절반도 안 되는 162억원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3년 후인 2011년 픽셀플러스는 최대 실적인 447억원을 달성하며 화려한 재기를 알렸다.

[글로벌 IT CEO]이서규 픽셀플러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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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 CEO]이서규 픽셀플러스 사장

재성장 발판을 만든 것은 이서규 픽셀플러스 사장의 뚝심이다. 그는 무엇이든 “부딪혀 보자”는 성격이다. 때로는 무모하기도 하다. 그래서 벤처다. 도전이 없으면 성과도 없다. 그 덕분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힘든 일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속으로 되뇌인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아니면 누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노라면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는 것도 같다. 그 빛을 찾아가는 일을 이 사장은 지치지 않고 몇 년이고 되풀이했다.

이서규 사장이 CMOS 이미지센서(CIS)와 시스템반도체(SoC)를 전문으로 하는 픽셀플러스를 창업한 것은 2000년이다. 그는 1984년 LG전자에 입사해 10년 이상을 고체촬상소자(CCD)를 연구했다.

“당시만 해도 CIS는 품질이 CCD보다 좋지 못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습다. 하지만 언젠가는 CIS가 CCD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창업했습니다. 이미지센서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로직 회로가 모두 CMOS 공정으로 생산되기 때문이죠. 공정이 같아 통합칩이 가능한 CIS 수요가 커진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CCD 전문가였던 그가 CIS 기업을 창업한 이유였다.

1999년 LG전자와 현대전자의 반도체사업 빅딜이 있은 후 그는 무작정 LG전자를 나왔다. 그는 평소 존경했던 김춘기 KAIST 교수를 찾아갔다. 그의 비전을 설명하자 김 교수는 흔쾌히 그를 도왔다.

“교수님이 설명을 듣더니 연구실 절반을 내어주며 마음껏 연구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픽셀플러스는 대전 연구실 반쪽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속도는 생각 이상이었다.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내장되면서 CIS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창업 5년 만에 389억원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 힘으로 그는 나스닥 상장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2005년 말 픽셀플러스는 나스닥에 상장됐다.

굳이 코스닥이 아닌 나스닥을 향했던 것은 처음부터 그의 목표가 글로벌이었던 탓이다. 나스닥 상장기업이라는 꼬리표는 픽셀플러스 글로벌 비즈니스를 도울 것이라고 믿었다. R&D 자금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스닥은 쉽지 않았다. 우선 관리비용이 너무 많았다.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터졌다. 중소기업이 한 번 겪어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나스닥 상장 직후 매그나칩이 특허 소송을 걸어왔다. 억울해도 합의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지만 이 사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싸웠다. 결국 특허소송 7건은 모두 픽셀플러스의 승리로 끝났다. `상처뿐인 영광`이었다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 쉽게 합의했다면 그런 일은 계속됐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스닥 상장에 힘입어 자신있게 글로벌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실제로 나스닥 상장 기업이라는 브랜드는 비즈니스에 힘이 됐다. 어느 정도 매출이 오르자 품목도 애초 자신이 꿈꿨던 분야로 바꿨다.

“대기업 공급 비즈니스는 물량은 크지만 이익이 박하잖아요. 종속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제 성격에 맞지 않고요. 가장 매출이 높을 때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시큐리티 분야였다. 시큐리티는 CIS가 아닌 CCD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장을 뚫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으로 갔다. 하지만 중국을 잘 몰랐던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대리점에 물건을 주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기 일쑤였다. 법인까지 세웠지만 오히려 그 법인이 픽셀플러스의 발목을 잡았다. 대리점과 법인에서 센서 품질이 좋지 않다면서 가격을 마구잡이로 인하했다. 그렇게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중국인들은 픽셀플러스를 탐냈고 실제로 매각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신제품 출시까지 늦어졌다. 수탁생산업체(파운드리)를 동부하이텍에서 UMC로 바꾸는 과정에서 지체된 것이다.

2007년 말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왔다. 이 제품이 픽셀플러스를 살렸다. 이 칩은 이서규 사장이 CCD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통합칩 `PC1030`이다. CCD를 사용하면 구동칩을 비롯한 별도의 칩 2~3개를 사용해야 하지만 CIS는 통합이 가능했다. 저가 시큐리티 제품부터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사세는 너무 기울었다. 2008년 매출이 162억원으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당기순손실이 140억원에 달했다. 재고는 쌓여갔다. 그 해 결국 나스닥 상장 폐지라는 고배도 마셨다.

그보다 더 아팠던 것은 2008년 12월이었다. 직원 월급도 주지 못했다. 급기야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직원 89명을 40명으로 줄였다. 힘이 들어도 희망은 있었다. 새 제품이 회사를 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09년 1월 제부도로 워크숍을 떠났습니다. 직원이 절반도 남지 않았지만 다행히 초기 멤버들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강소기업이 되자`고 함께 외치고 다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이 사장은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너져 내렸을 그 때, 그는 오로지 희망만을 봤다.

그 사이 PC1030이 중국에서 퍼져나갔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중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는 대리점에 먼저 물건을 공급하는 한국에서의 관행을 따른 탓이었다.

“한 중국인이 제게 일러주더군요. 중국에서 돈은 곧 신용이라고. 정말 팔 의지가 있는 대리점이라면 먼저 돈을 내고 물건을 사올 것이라고. 이것이 중국의 관행이라고 말이죠.”

그때부터 선입금을 고집했다. 우연인지 실력있는 대리점도 나타났다. 수동소자를 전문으로 하던 기업이었는데 수완이 꽤 좋았다. 좋은 제품이 나오자 흔쾌히 새로운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다. PC1030이 중국에서 잘 알려지게 된 것은 이 대리점주의 덕이기도 했다.

입소문을 타는 것 같더니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2008년 그렇게 픽셀플러스를 힘들게 만들었던 재고가 이번에는 픽셀플러스를 살렸다. 웨이퍼 2000~3000장 정도 재고가 있어 판매 속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급기야 2009년에는 흑자까지 났다.

이때부터 픽셀플러스는 재성장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더불어 이서규 사장의 얼굴도 폈다. 매출도 2009년 175억원, 2010년 253억원으로 조금씩 늘더니 불황의 골이 깊었던 지난해에는 무려 77% 성장한 447억원 매출을 올렸다. 픽셀플러스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그 뿐인가 107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도 기록했다.

올해에는 기대가 더 크다. CCD 성능을 훨씬 뛰어넘는 CIS를 내놓은 것이다. 어두운 터널에서나 야간에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CIS로 이미 시큐리티 전시회에서 큰 이슈가 됐다. 픽셀플러스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사장은 언젠가는 대학생과 스타트업 기업에게 강연도 하고 싶다. 종종 학생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그를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해주고 싶다. 희망과 함께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서규 사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에서 출발한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한다”며 “이것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픽셀플러스를 그런 회사로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라며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돼 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서규 사장의 성공 키워드

▲부딪혀 보자

-길은 없다. 벤처기업은 길을 개척해야 한다. 목표가 있다면 과감하게 부딪혀 보자.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부딪혀봐야 한다. 그러면 길이 생긴다.

▲글로벌이 살길이다

-한국 대기업에 공급하는 구도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중소기업도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내가 못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 반드시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사업가에게 힘을 준다.

◇이서규 사장 약력

◇픽셀플러스는

2000년 4월 설립된 픽셀플러스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카메라폰용 130만 화소 CMOS 이미지센서를 개발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2005년에는 세계 최초로 자동초점 기능 내장 200만 화소 이미지센서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5년 12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며 매출이 급감하고 나스닥 상장 폐지 아픔을 겪었으나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며 다시 성장 발판을 만들었다.

픽셀플러스는 CMOS 이미지센서(CIS)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반도체 전문업체로 성장하고 있다. CIS에 구동칩을 비롯한 주변회로를 모두 내장한 시스템반도체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휴대폰 분야에서 시작해 시큐리티, 블랙박스, 의료 영상장비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 나갔다. 중국 수출이 급격히 늘어난 2011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회사는 `이미징 기술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를 모토로 이미지센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 눈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센서를 누구보다 먼저 개발해 내는 것이 목표다.

매출 추이(단위:억원)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