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향후 3년간 450억달러(약 50조5300억원)를 쏜다. 주당 2.65달러의 주식배당을 실시하고 100억달러 상당의 자사주도 매입한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판매 증가로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 정상 수준 이상으로 현금 보유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분기 보유 현금 규모가 976억달러를 넘어섰다. 애플은 그동안 연구개발과 인수·합병(M&A), 부품업체에 선급금 지급, 인프라 구축 등에 엄청난 현금을 투입해 왔다. 그럼에도 현금 보유량이 줄지 않아 배당과 자사주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써도 장사가 너무 잘돼 현금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배당을 발표한 19일 애플 주가는 15.53달러(2.65%) 오른 601.10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600달러 선을 넘어섰다. 증권사와 투자은행들 대부분이 매수 주문을 유지하거나 목표가를 올렸다. 그러나 애플 주주들은 의외로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새로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보다 뜨겁지 않다. 이유는 뭘까? 애플이 혁신적 제품으로 고수익을 좇아 투자할 만한 곳이 줄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IT 기업들은 배당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혁신 본능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애플의 자신감에는 변화가 없다. 혁신은 애플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전략적 투자를 위한 현금도 충분하다. 최근 콘퍼런스콜 행사장에서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그동안 강력한 힘을 보여주지 못한 시장이 수두룩하다.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 같은 모습이다. 세계 언론은 애플의 이런 당당한 태도에 `놀라움`을 넘어 `공포스럽다`고 표현했다.
아이팟을 처음 출시했을 때 애플은 주머니 속에 노래 1000곡을 갖고 다닐 수 있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이제 우리는 신문을 시청하고, 잡지를 들을 수 있으며 통화를 볼 수 있습니다. 강의실을 어디에나 데려가고 서재를 통째로 휴대하고 별을 만질 수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것(아이패드)으로 인해…`라며 고객을 설득했다. 그들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집중했고,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런 비즈니스 생태계가 엄청난 부(富)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창조경제에 접어들면서 눈에 보이는 기술이나 제품의 가치는 점점 사라진다. 휴대폰, TV,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보다 디자인과 아이디어, 그리고 생태계가 핵심 키워드가 된다.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embedded), 뒤에서 조용하게(calm) 움직인다. “가장 성숙한 기술은 사라지는 기술(disappearing technology)”이라는 마크 와이저의 명언이 실현되는 것이다. IT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다. 자동차(스마트 카), 건설(u시티), 의료(헬스케어), 문화(3D 콘텐츠), 제조(e매뉴펙처링) 등 모든 분야가 애플이 선점한 고유한(?) 비즈니스 생태계 속으로 전력 질주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 미래 산업, 새로운 비즈니스의 운명이다.
우리는 이미 소프트(Soft)하고 스마트(Smart)한 지식서비스가 세상을 지배할 것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근본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새삼스러울 게 없다.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큰 신생벤처`라고 부르는 애플이 무서운 이유다. 10년 후에도 애플이 건재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휴대폰과 반도체만 가지고 숨을 헐떡이며 ?아가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