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문화다] "무책임, 무식한 억압! 규제도 공부좀 하라"

“마땅히 있어야 할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놓지 않고 무조건 만화를 대상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윤태호 작가는 강경한 어조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비판을 이어갔다. 윤 작가는 `이끼`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이 이 `톱 클래스` 작가를 자극했을까. 지난주 목요일 서울 목동 방심위 앞에는 윤태호 작가를 비롯해 강풀(본명 강도영), 주호민, 정연식 등 누구나 알 만한 만화가들이 모여 피켓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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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도영, 주호민, 윤태호 작가

최근 방심위가 일부 웹툰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는 등 제재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방심위의 다소 뜬금없는 규제는 최근 불거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웹툰이 지목된 데서 시작됐다. 이날 모인 작가들은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분노가 치밀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웹툰을 지목하고 이를 규제하겠다는 단순한 방심위의 발상이 오히려 더 폭력적이고 모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창작물 규제라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논의는 고사하고 `아이들 훈계하듯` 콘텐츠를 취급하는 규제기관의 무성의함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강도영 작가는 “웹에는 자정기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웹은 작가와 독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실시간 반응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강 작가는 “조금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어도 `청소년들이 보는데…`란 댓글이 달리는 곳이 인터넷”이라며 “최소한 독자들에게 평가받기 이전에 유해매체물이란 딱지를 붙인다는 것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만화진흥법 통과를 계기로 만화계 안에서 자체적으로 등급 가이드라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허탈감은 더욱 컸다.

윤 작가는 콘텐츠 규제가 창작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란 낙인이 찍히면 포털 등 만화를 싣는 공간이 위축돼 예전 만화 잡지들이 몰락했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창작자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기 검열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창작자에겐 아이디어란 매번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순간순간 순도 높게 어떤 떠오르는 생각을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검열은 이런 과정에 심각하게 피해를 줍니다.”

윤 작가는 방심위 등 규제 기관이 콘텐츠에 철퇴를 내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소한 해당 매체를 잘 아는 이들이 참여하는 논의 과정이라도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다.

만화계는 예전처럼 규제에 맥없이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작정이다. 가능한 법적 수단을 동원해 `투쟁`의 절차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심산이다.

내친 김에 청소년보호법을 근본적으로 뒤돌아보고 필요하다면 개정까지 이뤄낼 작정이다. 윤 작가는 “어린이날 화형식, 청소년보호법, 대여점 논쟁을 거치며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 만화 100년을 맞았다”며 “이제는 불필요한 억압에 콘텐츠 업계가 연대해 더욱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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