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 <86> 본질 드립
자기 주장에 대한 상대방 반박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본래 주장만을 되풀이 하는 행태를 일컫는 말.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 올린 자기 주장의 논거가 공격받을 때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며 이를 방어하기보단 상대방이 본질을 놓치고 있다며 훈계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자신이 애초 제기한 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말꼬리만 잡는다는 비난을 담고 있다.
실제로 문제의 본질보다는 사소한 발언을 꼬투리 잡아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일이 흔하지만, 이 표현은 정말 사소하지 않은 문제를 지적당함에도 상대의 문제제기를 사소한 꼬투리 잡기로 치부하고 자기 주장만을 반복하는 행태를 비꼬는 표현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보냐`는 잠언을 오용하는 경우다.
토론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흔히 `본질은 그게 아니고~` 류의 발언이 나오는 데서 유래했다. `본질`이란 단어에 `어떤 상황에 처해 어이없는 발언이나 군색한 변명을 하는` 것을 일컫는 `드립` (본지 2010년 7월 16일자 27면 참조)을 결합한 표현이다.
엔하위키는 이를 `주장에 대한 반론-(본질은 그게 아니고~라며) 하던 말 반복-재반론-(본질은 그게 아니고~라며) 하던 말 반복-재반론으로 이어지는 무한루프`라고 설명한다.
논리적 근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며 지지와 관심을 끌려는 글이 많은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다. 증거를 놓고 다투기보단 자기 주장에만 집중하는 행태다. 선정적 주장을 앞세우는 이와 그 와중에 끝까지 형식 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사람이 충돌하면 대책 없는 키보드 배틀이 이어진다. 결국 `본질 드립 하지 말라`는 조롱으로 끝난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인터넷 토론은 종종 `정부의 대미 굴종 외교에 대한 분노가 이번 항쟁의 본질`이란 식의 주장으로 마무리되곤 했던 것을 사례로 들 수 있다.
* 생활 속 한마디
A: `해적기지 반대`는 폭력을 일삼는 정부에 대한 풍자일 뿐입니다.
B: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보면 문제 발언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본질 드립`일 뿐이죠.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