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말한다] 웹툰 / 인터넷 새 문화? vs 학교 폭력 원흉?

지난달 27일 아침, 20~30여명의 만화가들이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건물 앞에 모였다.

방심위가 네이버와 다음 등에 연재되는 웹툰 23편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 데 항의하기 위해서다. 1997년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지 15년 만에 다시 만화가 규제 리스크 앞에 선 것이다.

웹툰은 온라인 게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발달한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탄생한 대표적 토종 문화 콘텐츠로 꼽힌다. 출판 만화가 고사한 자리에서 창작자 열정이 인터넷을 만나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 것이 웹툰이다.

하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웹툰은 기성 세대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웹툰을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지목해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국 토종 콘텐츠 웹툰=네이버 웹툰 섹션에서만 주간 450만명이 찾아 2억건 이상 페이지뷰가 발생한다. 웹툰이 젊은 층에선 확실한 주류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았을 보여준다. 문화부에 따르면, 웹툰 시장 규모는 연간 1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출판 만화 시장을 이미 뛰어넘었다.

웹툰은 한국 IT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 상품이란 평가다. 단순히 만화책을 웹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두루마기처럼 화면을 스크롤하며 읽는 웹 고유 환경에 맞춰 효과와 표현을 극대화하며 탄생했다. 플래시 애니메이션·배경 음악 등을 붙여 다채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박인하 청강대 교수는 “웹툰은 한국 만화가 21세기에 발명한 새로운 매체”라며 “심의의 칼날로부터 웹툰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만드는 콘텐츠=웹툰은 아마추어 창작자와 독자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발전해 온 참여형 매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마추어가 작품을 올리고 독자 반응에 따라 인터넷에 퍼지며 지명도를 얻을 수있다. 네이버·다음·야후 등 주요 포털 연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수많은 실험이 이뤄지는 가운데 창의적 작품이 두각을 나타낸다. 그림과 내용이 조악해도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가 있으면 뜰 수 있다. `신과 함께`의 주호민, `마음의 소리` 조석 등도 아마추어 만화 사이트부터 시작해 유명세를 얻은 경우다. 각 포털도 아마추어가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한다. 네티즌은 댓글을 달고 만화를 퍼나르며 작가와 소통한다. 흔히 `잉여`라고도 불리는 인터넷 문화 상당수가 웹툰에서 탄생했다.

◇규제는 근본 해결책 아니야=`학교 PC실에서 보고 있는 사람 이어라` 웹툰 댓글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다. 그만큼 학생들이 부담없이 많이 즐기는 콘텐츠가 웹툰이다. 학생 독자가 많은만큼 학교 생활을 소재로 한 웹툰이 많고, 학교의 일상이 된 학원 폭력에 대한 내용도 많다.

방심위가 웹툰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23개 작품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한 것은 이런 폭력적 내용에 대한 우려에 기반한다.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기획팀장은 “학교폭력을 다룬 웹툰은 실재하는 학교폭력 문제에 만화적 상상력을 더해 독자의 공감을 얻은 것”이라며 “매체 자체에 대한 규제는 선후가 어긋난 것”이라고 말했다.

매체 영향에 대한 엄밀한 연구 없이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황승흠 국민대 교수는 “책이나 만화, 음악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영화·게임과 달리 연령 등급 분류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라며 “창작계 내부의 자율 규제를 실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