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망 늦춰지는 바람에... 필요기관 `패닉`

#지방 장의업자 A씨와 B씨는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소방 무전을 도청해 부당이득을 챙겨오다 올해 초 경찰에 적발됐다. 이 지역 소방 무전이 도청이 쉬운 단파송수신(VHF) 방식인 점을 노려 무전내용을 훔쳐들은 뒤 사고현장에 먼저 도착, 시신을 수습하고 이를 장례식장에 넘기는 방식으로 불법영업을 일삼은 혐의다.

#부산지하철 1호선은 1984년 개통 이후 현재까지도 아날로그 방식 무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노후화된 무전기가 불통되기 일쑤지만 기관사들은 개인휴대폰을 쓰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 방식이 결정되어야 새 장비를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이 지연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누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경찰청, 소방방채청, 지하철 등 재난망 필수기관에 도입이 늦춰지면서 노후화된 아날로그 장비 안전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경찰청은 망 단일화 필요성에 따라 2000년부터 독자망을 구축하던 중, 2003년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현 재난망) 사업이 발족되면서 이 사업을 통합시켰다. 하지만 사업이 2008년 감사원의 요구로 중단되는 등 파행을 겪으며 낡은 시스템을 그대로 운영 중이다.

현재 경찰은 8개청 및 고속도로(서울, 경기, 인천, 대전, 광주, 부산, 울산, 대구, 전국 고속도로 3500km)에서 테트라 방식으로 통신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 8개청은 VHF를 사용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무선통신 환경으로 민생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이 구분되어 통신환경이 다르다 보니, 광역 지점끼리 지위체계 확보와 범죄발생시 즉각적인 조치가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소방방재청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무전을 주고받아 감청 등이 주기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장비 교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워 교체는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산림청은 1990년대 도입한 아날로그 장비를 주력으로 쓰고 있고, 국립의료원 등도 지난 2009년 재난망 사업에 따라 아날로그 장비를 철거했다가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임대 형식으로 통신 시스템을 다시 꾸몄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부 기관에서는 노후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아날로그 장비를 새로 도입하는 등 `혈세 낭비`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통신장비 업계 한 관계자는 “재난망 사업이 지지부진하며,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들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몇 년 뒤 바꿔야하는 아날로그 장비를 다시 도입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011년 초 다시 재개된 재난망 사업은 현재 2차 기술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 정상적인 잘차를 거치면 3월 말 검증결과를 토대로 상반기 안에 기술방식과 로드맵 등이 확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가망과 상용망의 대립이 거세고 총선, 대선 등 올해 예정된 굵직한 외부 이슈들로 인해 결정이 또다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난망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기술검증은 해당 기술이 재난상황에 필요한 요구조건에 부합하는지를 살피는 단계”라며 “사업방식을 결정짓지 않으면 현장 혼선이 가중되는 만큼 검증 결과를 내놓은 후 이견이 존재해도 이를 빨리 봉합하고 정책 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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