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고생,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인생의 삼고(三苦)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인생의 삼고(三高)다. 고독하지 않으면 몰입할 수 없으며, 고생하지 않으면 대가(大家)가 될 수 없으며, 고통체험을 맛보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삶의 모든 의미와 가치는 고독 속에서 잉태되고, 고생을 통해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며, 고통 속에서 나의 지식으로 체화된다.
삶은 `장벽`을 넘고 `절벽`을 건너는 고난의 연속이다. 꿈의 목적지는 언제나 `장벽` 너머에 존재하고 `절벽`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장벽`을 넘고 `절벽`을 건너야 `새벽`을 맞이할 수 있고, `개벽`은 주로 어둔 밤의 끝자락인 `새벽`에 일어난다. `장벽`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고독의 심연으로 파고 들어가는 깊이도 깊어져야 한다. 절망은 `절벽` 앞에서 살아간다. `절벽`에 직면한 절망이 샘해질수록 고독으로 파고들어가는 깊이도 깊어져야 하며, 고독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갈급함의 바람도 더욱 세게 불어야 한다.
창조로 연결되는 고독은 `고독감`이 아니라 `고독력`이다. “감상적인 고독감(loneliness)과는 달리 고독력은 영어로 `Solitude`다. 고독감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라면 고독력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고독감이 느낌이라면 고독력은 혼자일 수 있는 힘이다. 자기를 일부러 고독하게 만드는, 그만큼 강한 사람이다.” 이시형의 `내 안에는 해피니스 폴더가 있다`에 나오는 말이다.
깊어가는 밤, 책장 넘기는 고요함 속에서 즐기는 고독함이 `고독감(孤獨感)`의 우수(憂愁)로 빠지지 않고 `고독력(孤獨力)`의 향연으로 이끄는 절친(切親)을 만날 수 있다. `고독감`은 고독함에 빠져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지만 `고독력`은 고독함을 통해 고고(呱呱)한 자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작곡을 했던 베토벤은 작곡가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청력을 잃고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은 청력을 잃은 순간부터 창작되었다. 그는 고독감으로 스스로를 우울의 늪에 빠뜨리지 않고 고독력으로 자신과 전쟁을 치루면서 인류사에 영원히 빛나는 선물을 주고 떠났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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