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디지털 기기가 무선으로 통신하는 시대. 디지털기기 연결의 첫 관문은 아날로그반도체인 RF(Radio Frequency) 집적회로(IC)다. 안테나로부터 수신된 주파수를 디지털 시스템반도체(SoC)로 이어주는 역할을 RF칩이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같은 통신시스템은 안테나-RF-IF(중간주파수)-베이스밴드모뎀으로 이어지는 신호체계를 가진다. 베이스밴드 모뎀은 음성이나 영상, 데이터를 압축하거나 풀어내는 부문이며, IF는 고주파와 베이스밴드 다리 역할을 한다. 수백㎒에서 수㎓에 이르는 통신 주파수를 직접 다루는 것은 RF다. 그래서 RF를 고주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RF기능을 칩으로 구현한 RF칩(RFIC)은 통신 시장의 확산에 따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기지국과 휴대폰, 방송국과 TV·라디오 기기, 레이더와 군사 시스템을 연결하는 것이 RF의 주 역할이었지만 최근 그 용도는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 TV와 TV, 디지털카메라와 노트북, 스마트폰과 TV 등등. 모든 디바이스를 무선으로 연결해 콘텐츠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 시장이 확대되면 RF시장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스마트 세상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아날로그반도체가 RF 칩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선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그곳에는 무조건 RF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RF 칩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때도 많다. 신호를 송수신하는 RF 파트를 베이스밴드 모뎀과 통합해 싱글 칩으로 내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RF 분야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검증된 기술력이다. 약 15년에 걸쳐 여러 분야에 걸쳐 아날로그반도체 반도체설계전문회사(팹리스)들이 탄생했지만, RF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모바일 TV용 RF 칩을 개발하던 업체들은 모바일TV 베이스밴드 부문까지 통합해 이 분야 시장을 장악했다. 처음에는 지상파 DMB로 시작해 지금은 ISDB-T, CMMB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인수된 것도 RF 분야에서다.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스는 아날로그디바이시스에, FCI는 실리콘모션에 인수된 바 있다.
◇휴대폰 RF 다시 큰다=2.5세대 모뎀 시장은 살아있지만 RF 트랜시버(스탠드 얼론) 시장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퀄컴과 같은 베이스밴드모뎀 칩 업체들이 대부분 통합칩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3G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RF칩 시장은 다시 생겨났다. 한 발짝 더 나아가 4G 시장은 RF칩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시장조사기관인 페트로프그룹에 따르면, RF트랜시버(송수신) 칩은 2010년 7억 5000만개에서 2015년 15억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태블릿PC)의 성장에 따라 별도의 RF 트랜시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견됐다. 3G와 4G에서는 특성상 멀티밴드·멀티모드를 지원해야 하는데, 저사양 베이스밴드 모뎀까지 멀티모드의 RF 트랜시버를 통합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고가의 베이스밴드 모뎀 정도가 RF칩을 통합해 내놓고 있다.
페트로프 그룹은 세부적으로 RF 트랜시버 시장을 세부적으로 분석했다. EDGE/GPRS/GSM 분야 RF트랜시버는 2010년 3억3000만개로 시장 점유율이 44%에 달했지만, 2015년께에는 10%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합칩 때문이다.
3G 멀티모드 트랜시버는 2010년 4억개(점유율 56%)에서 2015년 10억개(점유율 75%)로 늘어날 것이라고 바라봤다. LTE용 RF 트랜시버는 2015년 3억개 정도의 시장을 형성해 점유율은 18%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RF 칩 기업인 GCT세미컨덕터, FCI 등도 LTE 서비스를 등에 업고 다시 휴대폰용 RF 공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모바일 외 영역도 무궁무진 = RF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통신이기는 하지만, 업계는 통신용 RF시장이 전체 RF의 50%도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레이더 시스템이다. 레이더는 전자파를 쏘고 돌아오는 것을 받아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국방용 레이더는 물론이고 차량충돌 방지용, 거리 계측용, 온도 탐지기용 등 레이더 분야는 매우 넓다. 이 분야 RF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새로운 응용 분야를 발굴해 낼 수도 있는 분야다. 퀄컴이 CDMA를 개발한 것도 군사용 통신 시스템을 개발하다 나왔다. 국내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이 분야 RF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 중에서는 알에프에이치아이씨(RFHIC)라는 벤처기업이 화합물반도체를 이용한 증폭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X밴드(8~12㎓) 20W SSPA(Solid State Power Amplifier)를 영국 선박용 레이더 제조사 주문을 받아 개발한 바 있다.
비접촉식 무선인식 분야도 성장이 예상된다. 하이패스, 버스카드, 도난방지용 태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근거리무선통신(NFC)도 확장일로다.
주변기술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RF 성능은 그 자체로만 최고의 성능을 내는 것이 아니라 패키징, 장비, 소재 기술이 결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고주파 신호를 측정하는 각종 계측기와 테스팅설비 역시 RF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필수 인프라다. 이 분야 역시 대부분 외산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벤처기업 CEO는 “그동안 RF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비슷비슷한 분야에서만 출현해 경쟁했는데, 실은 국내 기업이 어떤 영역을 발굴해야 할지 몰라서인 이유도 있다”며 “새로운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영역을 조사하고 발굴하는 일을 정부나 기관이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