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아니라 정책 의지의 문제입니다. 상용화를 목표로 강력하게 밀어 붙일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강철희 고려대 명예교수(65)는 “통신장비 분야는 아직 정부 관심이 절실하다”라며 “선순환 생태계가 마련될 때까지는 지속적인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국내 통신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한양대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16년을 근무했으며 고려대에서 17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에는 통신학회 회장을 맡는 등 학계와 산업계 산파 역할도 해냈다. 인생의 절정기 대부분을 통신과 함께한 뼛속까지 `통신맨`인 셈이다. 엔지니어로서 인생 1막과, 교수로서 인생 2막을 모두 마감하고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비록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아직도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직간접적으로 몸 담았던 통신장비 분야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
“기술은 일종의 유행입니다. 국내 통신 역사 초창기 시절 TDX와 같은 국산 교환기 개발이 불붙으면서 가히 통신장비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어 인터넷과 맞물려 스위치·라우터와 같은 네트워크 장비가 뒤를 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단말이 대세입니다. 단말기가 통신의 꽃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통신기술은 돌고 도는 역사입니다. 자칫 한 쪽에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뒤처질 수 있습니다. 균형을 잃고 한 쪽이 밀리면 산업 전체가 흔들립니다.” 강 교수는 “기술은 균형감이 중요하다”며 “통신장비 홀대가 결과적으로 전체 산업 경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첫 시작할 당시 공중전화기(D.D.D) 개발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유학 후 ETRI에 합류한 후 첫 과제로 일본 전량 수입 제품이었던 전화기 국산화에 성공해 국산 공중전화기 시대를 열었다. “성능과 기능 모두 일본 제품 이상이었습니다. 마이크로 칩을 사용해 고장률을 크게 낮추고 가격도 떨어뜨렸습니다. 기계식 전화기로 힘들었던 시내·시외 통화 겸용도 가능했습니다.” 강 교수는 무엇보다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 개발자로서 보람을 느꼈다. 일본에서 통신을 공부했지만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그는 지금도 자력으로 확보한 토종 기술이 많아야 통신 강대국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첨단 기술을 다른 나라보다 먼저 확보하기 위해 산업계와 함께 두 팔을 걷어 붙였던 정통부 시절을 잊지 못한다. 해체된 정통부에 대해서 미련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강 교수는 “우리가 개발하면 늦더라도 우리 기술”이지만 “남이 개발하면 지금 당장 돈이 되더라도 결국 남의 기술“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만큼 초반에 다소 힘들고 어렸더라도 원천기술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뒤늦게 `이삭줍기` 식으로 주워 담는 특허는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