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승호 박상돈 한지훈 기자 =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방안이 무산된 데는 정부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위원회와 법무부 모두 과징금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법무부가 요구한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내 위원(1급) 자리를 두고 타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선위는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 조사와 금융위가 수행하는 주요 사항을 사전에 심의하기 위해 금융위 내에 설치된 기구이다.
◇ 증선위원 자리 도입 무산
금융위는 지난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부처 협의 과정에서 법무부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법무부는 형사처벌 대신 과징금으로 끝나는 것은 범법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행정기관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행정처분만 내리고 사건을 종결짓는다면 사법적 차원에서 범죄를 처벌하기보다 정책적 수단으로 과징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모호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보다는 과징금 부과가 더욱 효율적이라는 판단 아래 과징금 방안을 추진했다. 예를 들어, 짧은 시간에 소액의 주가조작을 하고 빠져나가는 경우, 기소되기가 어려운데, 차라리 과징금 부과가 훨씬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 뒤에서는 법무부와 금융위의 밥그릇 싸움이 전개됐다.
법무부는 과징금 제도 수용조건의 하나로 증선위원 자리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과징금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증선위 심사과정에서 과징금 부과 대상과 검찰 고발 대상을 판단할 때 검찰 인사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런 요구를 거절했다.
금융위는 증선위 산하 자문기구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에 현직 부장검사급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증선위원 자리는 금융위의 조직 개편과 연결된 문제여서 과징금 문제라면 법무부가 자조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었다.
지금도 금융위에는 법무부에서 파견 나온 부장검사급이 법률자문관으로 일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무부의 요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어서 더는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 (법무부가)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면서 과징금제가 무산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금융범죄 처벌이 약하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며 "증선위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하나로 검토됐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속고발권 없는 과징금은 속 빈 강정
금융위가 추진한 과징금제는 위법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과징금 부과를 통해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현재 주가조작 등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는 법무부 소관의 형벌제로만 다뤄지고 있다. 증선위는 공시 위반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주가조작은 대상이 아니어서 무조건 검찰 고발로 가야 한다.
그러나 형벌까지 가기에는 사안이 미미한 경우가 많다.
또 형사 처벌까지 이뤄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나마 금융당국이 적발해 검찰에 고발해도 기소율이 낮은 편이다. 처벌도 집행유예나 사회봉사명령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한국거래소가 주가조작 등 증시 불공정거래 의심 사건으로 지목한 338건 가운데 금융위가 검찰에 고발한 것은 138건이며, 기소된 것은 18건이었다. 전체 불공정거래 혐의사건의 5.3%에 불과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징금 제도는 실효성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모호한 불공정거래 행위는 과징금으로 규율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징금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전속 고발권이 없으면 속 빈 강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징금 부과 후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약속이 없는 한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과징금 부과를 수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전속 고발권이 있다. 공정위나 국세청이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이 기소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공정위 사건은 과징금 부과로 끝날 때가 많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공정위가 전속 고발권을 얻는 데 10년 정도 걸린 것으로 안다"며 "법무부가 그렇게 쉽게 금융당국의 전속 고발권을 인정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법·금융 전문성 인정하고 적극 조율해야"
전문가들은 증선위가 주가조작 혐의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부처 간의 좀 더 적극적인 조율을 강조했다.
금융위와 법무부가 제도 개선에 원론적으로 찬성한다면,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자세한 방식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전부 형사범죄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처벌까지 이르는 단계가 너무 길기 때문이다.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과징금 부과를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륙법계에서는 민사와 형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판결을 통해서만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보지만, 검찰과 법원을 통한 제재가 무조건적인 원칙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검찰과 증선위가 공조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다. 다만, 불법성이 심각하지 않은 불공정거래 행위는 과징금으로 규율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국외 자본이 한국 자본시장을 유린하는 사례가 발생하면, 과징금은 효율적인 제재 수단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010년 11월 옵션쇼크 사태 때 도이치증권 자금을 수탁한 도이치뱅크 한국지점에 과징금을 물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두 기관의 자리싸움으로 비화한 현재 상황에 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파견 검사가 증선위에 직접 참여할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금융위와 법무부가 이견 조율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제도 개선이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측이 대립하는 것은 시장 건전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법과 금융의 전문가로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역할 분담을 잘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hsh@yna.co.kr
kaka@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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