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승호 한창헌 이영재 기자 =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한탕주의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개인들의 최근 투자행태가 흡사 도박판의 투기를 방불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테마주라는 수십 개의 종목이 단발성 뉴스에 요동을 치고 투기성이 강한 파생상품 등 고위험거래에 뛰어드는 개미들도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적인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투자자 교육을 활성화해 투기거래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와 증권사도 투기적 거래를 방조해 수수료 수입 올리기에 급급하기보다 건전한 시장 육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고위험거래 `개미무덤` 오명에도 급증
고위험 거래로 분류되는 파생상품의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4분기에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 개인의 거래대금 비중은 37.22%에 달했다. 선물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 90조원 중 개인이 30조원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전년도 4분기 개인 거래 비중은 27.22%였다.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얻은 FX마진 거래 증가 속도 역시 가파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FX마진거래 월평균 거래대금은 2010년 1분기 292억달러에서 지난해 1분기에는 505억달러로 급증했다. 3분기에는 628억달러로 불어나 협회가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분기별 최대치를 기록했다.
FX마진거래는 2개 통화를 동시에 사고팔아 환차익을 노리는 파생 선물거래다. 현재 이 거래에 참여하는 투자자의 99%가 개인투자자들이다. 이중 90% 정도가 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위험한 시장이다.
금융당국은 2010년 FX마진거래의 개인 손실액이 58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개인의 단타 매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 시장의 지난해 4분기 회전율은 184.15로 전년 같은 기간의 118.45보다 크게 높아졌다.
이 시장의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투기 거래가 극성이다.
레버리지 ETF의 대표상품인 `코덱스 레버리지`의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천760억원으로 전체 ETF 거래의 42.9%를 차지했다. 레버리지 ETF는 등락률이 코스피200 지수의 두배여서 고수익을 노리는 개인의 거래가 빈번한 상품이다.
◇투기거래와 도박시장은 닮은꼴
개인의 고위험거래 급증 현상은 카지노와 경마, 복권 등 최근 사행산업이 급팽창하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세계 경기침체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서민들이 도박판이나 투기시장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은 줄고 집값은 내려가는 데,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더는 기댈 곳이 없어지자 서민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탕주의에 빠지게 된다.
`한방`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들은 쌈짓돈을 털어 로또를 사고, 사채를 얻어서 경마장과 카지노를 찾는다.
복권과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체육진흥투표권 등 국내 6대 사행산업의 지난해 매출 전망치는 모두 17조8천억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넘는 규모다.
이들 합법적인 사행산업에 불법도박까지 더하면 전체 규모는 76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개미들의 고위험거래가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자본시장에서 적은 돈으로 단기간에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레버리지가 큰 파생상품이다. 정치 테마주 등 장중 주가 등락폭이 큰 코스닥 종목도 대박을 좇는 이들의 주요 투자 대상이다.
숭실대 경영학부 윤세욱 교수는 "유럽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서 최근 로또 붐이 일고 있다. 경기가 침체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사행산업은 물론 자본시장에서 투기적인 테마주와 파생상품 거래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팀 부장은 "개인의 임금 상승률은 높지 않은데 가계 소비와 대출은 늘면서 이런 것들을 한방에 해결해보려는 심리가 사회 전반에 많다. 특히 주식과 복권 등은 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탕주의가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전문가들 "사전 감시기능 강화해야"
개인들은 `로또`를 꿈꾸며 파생상품과 테마주에 베팅하고 있지만 정보력과 전문지식이 부족한 데다 투자 금액이 적어 거의 예외 없이 돈을 잃고 있다.
개인들의 투기 거래를 방치하면 서민경제는 더 악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에서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시장의 사전 감시 기능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정치 테마주에 대해 강력한 대응에 나섰지만, 주식시장에 독버섯처럼 번진 뒤여서 때늦은 개입은 오히려 개인의 피해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가가 많이 오르기 전에 이상징후를 포착하고 작전 세력의 개입도 사전에 차단해야 개인의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안동현 교수는 "시장의 자정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테마주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주가가 이미 많이 오른 상태여서 시점은 좋지 않았다. 감독당국의 시장감시 기능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세력들의 시세조종도 사전에 차단돼야 한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의사소통 수단이 발달해 시세조종 위험도 커졌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들 스스로 투기 거래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도박 중독이나 다름없는 `투기병`에 걸린 이들이 자발적으로 치유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금융당국이 투기 거래에 대한 규제 수단을 강화하는 동시에 협회와 증권사들이 나서서 투자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계속 늘려야 하는 이유다.
윤세욱 교수는 "투자자 교육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이 없다. 장기투자의 효율성과 투기거래의 부작용을 교육하고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피해를 키우는 주가조작 세력 등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규정도 대폭 강화될 필요가 있다. 경제사범에 대해 유독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 안동현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내부자거래와 작전 세력 등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경제 사범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가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경실련 권오인 부장은 "개인의 투기거래를 조장하는 재야 전문가나 루머 유포자, 불법 거래 세력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sh@yna.co.kr
chhan@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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