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다간 전멸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호흡기로 연명하는 셈이지요.”
국산 통신장비 업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침체로 전체 통신산업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외산종속 등 문제가 심각해질 전망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다산네트웍스, 유비쿼스, 쏠리테크, SNH, CS 등 국내 주요 네트워크·통신장비 회사의 올 한해 매출은 2010년에 비해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들 회사의 경우 그나마 상황이 나은 축에 든다는 것.
실제로 숫자를 살펴보면 통신업계 위축 분위기는 뚜렷하다. 국내 주요 네트워크·통신장비 업체는 2011년 실적 하향세를 면치 못했다.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국내 통신 인프라 포화’가 지목된다. 유무선을 막론하고 더 이상 대규모 시장이 열리지 않아 업계 덩치가 시장 수요보다 커버린 상황에 직면했다.
국내 중계기 업체는 올 한해 시장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롱텀에벌루션(LTE) 등 중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4세대(G) 통신이 도래하며 일감을 모조리 잃었다. 일부에서 ‘펨토셀’ 개발 등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중이지만 임시방편에 그칠 뿐이다.
중계기 업계 한 관계자는 “더 이상 통신사업으로는 먹거리가 안 돼 아예 업종이 다른 신사업으로 눈길을 돌리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며 “기술기반 회사가 오죽하면 본업을 제쳐두고 다른 길을 가겠는가”라며 사태 심각성을 토로했다.
시장 위축은 곧 국산 제품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국내 시장 작아지자 글로벌 업체들이 저마다 할인정책을 꺼내 국산 장비의 설자리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국내 한 네트워크업체 사장은 “글로벌 업체들이 국내 중소업체 자릴 빼앗고 경쟁사가 없어지면 가격을 올려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몇 년 내 국산 장비공급사는 사라지고 글로벌 업체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업계에서는 국가차원 대규모 연구개발(R&D) 산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 등으로 흩어진 예산을 모아 국책과제로 대규모 통신 R&D를 진행해 연관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요 통신사 위주 정책을 CP, 장비업계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김준혁 한국지능통신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자동교환기(TDX) 개발 시절 같은 대규모 국책 사업이 필요하다”며 “정부 예산과 통신사업자 그리고 망을 이용하는 CP등이 매칭펀드 형식으로 예산을 구성해 통신사, CP, 장비업체가 상생할 수 있는 길 이외는 사실상 해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