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팬택 부활 그리고 박병엽

 ‘승부사’라는 별명 그대로다. 박병엽 부회장의 결단이 결과론적으로 팬택 부활을 이끌었다. 6일 박 부회장이 “물러나겠다”고 밝힌 후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채권단은 워크아웃 졸업을 선언했다.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돌입했으니 대략 5년 만이다. 적절한 타이밍, 정확한 상황 판단, 과감한 결정으로 이어지는 승부사적인 기질이 없다면 그렇게 빨리 결정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뒷이야기지만 박 부회장 결단을 놓고 말들이 많다. 팬택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라는 평가에서 본인 거취를 위한 계산된 시나리오였다는 설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 부회장을 곁에서 지켜본 기자조차도 헷갈린다. 배경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박병엽과 팬택’은 한 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가 팬택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했을 때 모두 눈과 귀를 의심했다. 개인적인 기억이 맞는다면 팬택을 설립한 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자진 사퇴를 결정하기는 처음이었다. 팬택 설립-휴대폰 사업 진출-현대큐리텔 인수-SK텔레텍 합병-워크아웃 등 지난 20년 동안 항상 팬택과 박 부회장은 하나였다.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팬택이 위태할 때 더욱 열정적이었다. 워크아웃 돌입한 후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좌우명이 될 정도로 사무실과 공장에서 살았다. 말이 좋아 사장실이었지 본인 표현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팬택을 끝까지 살리겠다는 일념하나로 동분서주하고 기득권까지 과감히 버렸다. 4000억원 지분을 팬택 회생자금으로 내놓고 백의종군했다. ‘사즉생’ 정신으로 팬택을 전두 지휘해 5년 만에 ‘워크아웃 꼬리표’를 뗐다.

 이유가 멀까. “빽도, 학벌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죽으라고 일하는 수밖에 없었을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석연치 않다. 곰곰이 따져보면 팬택 부활의 일등 공신은 박 부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너십이었다. 비록 정식 주인이 아니지만 주인처럼 회사를 이끌었기에 팬택이 회생했다면 과장일까.

 휴대폰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노키아라는 글로벌 기업도 한 방에 훅 날아갈 정도로 시쳇말로 졸면 죽는 곳이다. 시장에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투자와 기술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베팅이 필요할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질러야 한다. 순간순간을 놓칠 수 없고 미래까지 함께 봐야 한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다. 아주 특출한 경영자라면 모르겠지만 오너십이 없다면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반짝 실적이 아닌 17분기 연속 흑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박병엽이 없는 팬택을 상상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박 부회장만큼 팬택은 상징적인 기업이다. 삼성·LG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팬택은 밑바닥부터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또 다른 신화를 이루었다. 팬택 같은 기업이 많이 나와야 희망이 있다. 팬택은 부활에 성공했지만 다시 출발점에 섰다. 정작 주인공인 박 부회장이 사라진 팬택의 미래, 불안한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