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초고성능 컴퓨터 활용과 육성에 관한 법률(슈퍼컴퓨터 육성법)’이 발효됐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세부 실행계획은 내년 6월까지 마련된다. 슈퍼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슈퍼컴 육성법 마련은 2009년 발표된 슈퍼컴 톱500(Top500.org)에 국내 슈퍼컴이 한 대도 등재되지 못한 충격에서 비롯됐다. 고가 자원에 대한 투자 효용성이 낮고 대형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무엇보다 정책 부재가 국가 경쟁력 열세를 초래한다는 게 법안 마련의 가장 큰 배경이다.
◇국가 차원 슈퍼컴 자원 관리=슈퍼컴 육성법은 국가 경제발전, 삶의 질 향상, 국가 위기관리, 과학기술 혁신 등을 입법 취지로 한다. 2009년 발의된 이래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를 거치면서 시행령이 검토됐고 8일 발효됐다.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법안의 핵심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초고성능컴퓨팅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국가초고성능컴퓨팅센터와 전문센터 등 법안을 시행할 추진체계를 설치하고 슈퍼컴 육성을 위한 실무 규정을 마련해 기반을 조성하게 된다. 위원회는 국가 슈퍼컴 생태계 육성을 위한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내년에 시행할 구체적 시행계획도 마련된다.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본부장은 “이번 법안의 핵심은 슈퍼컴 산업 육성을 위한 컨트롤 타워 구성을 의무화했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직접 슈퍼컴 관련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슈퍼컴퓨팅센터가 설치돼 이를 시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별 전문센터는 2016년까지 5개 정도가 설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슈퍼컴 관련 부처가 교육과학기술부 등 일부 부처에서 국가 전체로 확대된다.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국가 계획에 기반을 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인력과 예산 등 슈퍼컴 관련 지원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사업에 대해 국가사업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게 가장 큰 의의다.
◇산업 전체에서 슈퍼컴 활성화 기대=업계 관계자들은 고사 상태에 처한 국내 슈퍼컴 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에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석원 한국HP 차장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슈퍼컴은 극소수 국가 기관과 제조업에만 필요한 인프라였다”며 “하지만 전 산업에 걸쳐 슈퍼컴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슈퍼컴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번 법안 발효의 의의를 설명했다.
슈퍼컴 육성법은 단순히 큰 슈퍼컴을 국가 계획 아래 만든다는 것뿐만 아니라 슈퍼컴 전문 인력 양성과 해외 전문가 활용 등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해외 사례 활용과 산학협력을 언급하고 있으며 슈퍼컴 발전을 위한 모든 행위를 허용한다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따라서 소수 관계자들과 하드웨어 업체 기술력에 의존하는 현재와 달리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전반에 걸친 발전이 예상된다.
임영환 SGI코리아 부사장은 “국내에서 수요가 급증하는 오픈소스 슈퍼컴 소프트웨어 기술이 확대돼 저렴하면서도 높은 성능을 갖춘 중소 규모 슈퍼컴 시장의 발전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법안이 되기 위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예산 지원과 효과적 사용을 위해 슈퍼컴 업체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이 위원회에 포진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전문인력 양성과 산학협력을 위해 정식 교육기관을 늘리고 산업체에도 그 역할을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지수 KISTI 본부장은 “슈퍼컴 업계의 숙원인 슈퍼컴 육성법 발효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슈퍼컴을 잘 사용하는 ‘슈퍼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슈퍼컴 육성법 발효로 달라지는 점
자료: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