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파격 인사는 향후 그룹내 주력 사업의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LG가 가장 큰 미래 먹거리로 꼽고 있는 부품소재 사업군이 진원지다. 부품소재 독립 법인 신설과 계열사간 사업 양수도, 수직 계열화 강화 등 다양한 움직임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어질 LG그룹 부품소재 계열사들의 조직 개편과 사업 재편 구도에 관심이 집중된다.
◇권영수, 에너지 사업 특명=이번 인사에서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는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으로 옮긴 권영수 사장이다. 외견상 권 사장은 그룹내 매출 규모 2위 회사 CEO에서 다른 계열사 사업본부장으로 내려 앉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구본무 회장의 각별한 신뢰가 반영된 ‘영전’이다. 그룹도 지난 2일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2차전지를 LG의 최대 미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구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인사”라고 강조했다.
실제 구 회장은 2차전지 사업을 세계 일류로 키울 수 있는 적임자로 권 사장을 발탁하는 동시에 스스로 직접 사업을 챙기겠다는 뜻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이 낙점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거론된다.
우선 권 사장이 LG디스플레이를 세계 LCD 패널 시장 선두로 올려놓은 것처럼 2차전지 사업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2차전지는 LCD 패널 사업과 속성이 유사한데다 고객사 구조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더딘 화학 업종의 문화를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전자 문화로 혁신해 보겠다는 뜻도 있어 보인다. 특히 권 사장의 거취 변화는 향후 LG그룹이 2차전지를 비롯한 에너지 사업군을 독립 출범킬 수 있다는 구상이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권 사장은 LG그룹내 손꼽히는 재무통이다. 삼성SDI가 2차전지와 태양광 사업을 축으로 독립 에너지 계열사를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LG그룹내 흩어진 에너지 사업을 모아 신설 계열사를 만들 가능성이 점쳐진다.
권 사장은 구 회장의 특명을 받아 LG화학내에서 사실상 독자적으로 사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재무통에서 LG디스플레이 CEO를 경험한뒤 화학 관련 사업을 성공시키면 그룹내 제조업 분야에서 차기 리더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부사장 CEO 대거 배출=이번 인사에서 부품소재 계열사들의 현직 부사장급을 CEO로 포진시켰다는 점은 또 다른 흥미거리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와 이웅범 LG이노텍 대표, 변영삼 실트론 대표 모두 부사장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실제 사업 현장에서 경험을 축적한 사업형 CEO를 길러내겠다는 뜻이다. 삼성에 비해 LG는 그동안 전자·화학 계열사 사장단 가운데 오랜 기간 현업에서 다진 이들이 적은 편이었다. 과거 사장단 인사에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사장단 인사 구도가 현장 경험과 성과 중심으로 바뀌는 긍정적인 변화”라며 “부사장 CEO들도 1년 정도 검증 기간을 거치면서 능력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창출에 집중해야 하는 탓에 부품소재 계열사들의 의사 결정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사장 대표들이 부품소재 계열사를 맡으면서 LG전자의 수직계열화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바닥을 다진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LG실트론 등 주요 계열사들을 동반 성장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도 높게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