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 절반인 30억 명이 하루 단돈 2.5달러로 연명하고 있다. 3000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먹고 입고 자고 움직이는 비용을 해결한다. 한쪽에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소유한 재산 일부를 나누는 자산가들의 기부활동이 줄을 잇는다. 지구촌 전체가 앓고 있는 불균형과 빈곤문제를 무조건적인 기부와 자선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
개발·행동경제학 분야 권위자인 딘 칼런 예일대 교수와 빈곤퇴치운동가인 제이콥 아펠은 세계적인 부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빈곤을 퇴치할 방안에 대해 경제학 이론을 도입해 설명하고 있다. 햇볕도 압박도 아닌 제 3의 길을 보여주는 이 책에서는 행동경제학과 빈곤의 현장을 연결해 전세계에 걸친 현장 조사를 실시한다. 금융, 농업, 교육, 의료 등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에 사람들의 비이성적 성향을 자극한 몇 가지 장치들을 설치한다면 가난으로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보인다.
저자들은 어부들에게 잡힌 물고기를 놓아주는 스님들의 방생의식에 빗대어 이를 설명한다. 자비심이라는 ‘좋은 의도’에서 비롯됐지만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의미 없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물고기를 구제하려면 어부들에게 하루 동안 아예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쓸데없는 수고를 덜고 시간 낭비를 줄이며 물고기들도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스님들의 방식보다 더 효율적이고 유용하다는 주장이다. 빈곤층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구체적이다. ‘구충제를 나눠주면 학생들의 출석률이 높아진다’ ‘적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담배를 끊게 한다’ ‘염소소독제를 떨어뜨리는 기계를 설치하면 설사병이 줄어든다’ 등의 이론을 경험에 비춰 검증한다. 또 무조건 빈곤퇴치 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빈곤 퇴치 활동이 효과적인지 엄격하게 평가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 정책이나 민간단체 구호활동이 과연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문제 근본 원인이 해결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더 잘 살게 되는 지 등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먼저 제고해보자고 제안한다.
단순히 좋은 의도와 선량함만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책은 돈을 기부하는 일이 매우 신성한 일이라고 추켜세우지도,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몰아치지도 않는다. 저자들은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기부와 나눔이 언제 어떻게 필요한지 알려준다. 연말을 맞아 기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딘 칼런·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청림출판 펴냄. 가격 1만7000원.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