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림읍 귀덕리, 햇볕이 내리 쬐는 브로콜리와 양배추밭 한 가운데 3층짜리 건물이 조용히 서 있다. 일반적인 업무용 건물과 별 다를바 없는 외관이다. 주변에 펼쳐진 밭을 둘러보면 특이한 구조물을 목격하게 된다. 솟대라기에는 너무 길고 타워크레인으로 보기에는 몸통이 좁은 구조물이 왜 밭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해결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리층 관측기 안테나입니다.”
마침 1층 로비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배석희 우주전파센터 연구개발팀장의 설명이다. “태양 흑점이 폭발했을 때 지구를 둘러싼 전리층에 영향을 주는 전파를 관측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건물 앞에 ‘우주전파센터’라는 간판이 서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는 한국이 최근 가입 승인을 받은 국제우주환경서비스기구(ISES)의 데이비드 버틀러 의장이다.
16일 개소한 방송통신위원회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1966년부터 태양 활동성을 관측해 왔다. 2013년 5월 태양활동 극대기를 앞두고 지난 8월 이천·강릉에 이어 제주도에 태양 흑점 폭발을 관측하고 예·경보하는 센터가 세워졌다.
태양활동 극대기란 태양 흑점 폭발 빈도나 강도가 세지는 때를 말한다. 보통 11년 주기로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과거보다 흑점 수는 줄었으나 강도는 훨씬 세서 지구 전파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높다. X선은 8분이면 지구 표면에 도달하고 고에너지 코로나 입자는 약 3일 후 도착한다. 이 때 무선통신·위성항법장치(GPS)가 교란되고 인공위성이 훼손될 수 있다. 미국·캐나다 등에서는 강력한 에너지 입자 때문에 실제로 전력선이 망가지는 등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재형 센터장은 “비행기가 많이 다니는 북극항로 주변은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 비행기가 통신 두절되거나 승무원이 피폭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지국이 영향을 받으면 주변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공군에서 미사일 훈련을 할 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ISES에 가입해 서로 태양 관측 자료를 공유한다. 특히 태양 흑점을 가까이에서 관측하는 미국 ‘에이스 위성’에서 오는 데이터를 국내 센터에서 받는다. 미국 밤 시간에는 한국이 주요 흑점 데이터 수집국이 돼 공조체제를 유지한다. 15명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한다. 내년에는 공군에서도 2명을 파견해 실시간 정보 공유를 할 예정이다.
1층에 위치한 우주전파예보 상황실에는 총 24개를 이어붙인 대형 디스플레이가 벽 한 면을 메우고 있다. 태양 흑점 위치, 흑점 가스 분출 모습, 입자가 퍼지는 경로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시시각각 시뮬레이션돼 보여 진다.
우주전파센터에는 전리층 관측기 외에 태양전파 관측기, 지자기 관측기가 있다. 3층 창밖 너머로 지름 13m짜리 둥근 접시 모양 파라볼라 안테나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안에 위성 관측기, 태양층 관측기, 태양전자 노이즈 관측기를 추가 설치한다.
데이비드 버틀러 ISES 의장은 센터를 둘러보면서 “이 지역은 전파 청정지역으로 태양 전파를 측정하기에 천혜의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