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융합, 블루오션을 찾아라 ] <3부> 방송산업 4C를 일으키자. ①저작권 보호, 생태 선순환의 열쇠

 2011년 4월과 5월 서울 지역 KT스카이라이프 가입자들은 셋톱박스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넘게 일부 지상파 HD 방송을 시청하지 못했다. 위성 방송 사업자와 지상파 방송사가 재송신 대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 MBC는 6일 동안, SBS는 48일 동안 위성 방송을 통한 HD 방송을 중단했는데 이 조치로 피해를 본 시청자는 무려 45만명에 달했다.

 방송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콘텐츠 저작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작자는 더 많은 저작권을 인정받으려 하고 사업자들은 최대한 싼값에 콘텐츠를 송출하고 싶어 한다.

 올봄 두 달에 걸쳐 벌어진 위성 방송 HD 지상파 송출 중단 사태는 이런 사업자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노출된 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한 방송 중단이 ‘엄포’ 차원을 넘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공공재 개념으로 인식되어 온 지상파 방송을 그대로 송출해 온 케이블 및 위성 방송 사업자들은 벽에 부딪혔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저작권에 대한 ‘제값’을 요구하면서 이들의 이해관계의 아귀가 틀어졌다.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사업자(SO) 간 재송신 대가 산정 문제는 몇 년째 법정공방을 지루하게 이어 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사업 전체가 콘텐츠와 연관된 방송 산업에서 저작권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주제다.

 ◇생태계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 다각화=방송 저작권이 이처럼 부각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시청자가 접하는 방송 플랫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IPTV, 케이블, 위성 등 방송 시청 형태가 다양해지며 콘텐츠를 취급하는 사업자는 몇 년 사이 크게 늘었다.

 지상파가 주축이 된 콘텐츠 제작 업계의 위기감도 한몫했다. 방송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수익성 및 전문화를 위해 콘텐츠 제작을 독립 사업자들에게 맡기며 역량이 분산됐다. 여기에 종편의 등장으로 지상파의 위상이 위협받는 동시에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만든 콘텐츠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어쩌면 콘텐츠 제작 업계가 취해야 할 당연한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다양화된 방송 플랫폼은 콘텐츠 제작 업계의 새로운 시장이다.

 ◇저작권 생태계 선순환의 키 공감대 확산 필요=저작권은 콘텐츠 산업 성장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다. 정당한 대가의 지불은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 공급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토양이다.

 하지만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이 열쇠는 사업자 간 이해관계에 얽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는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가입자에 따른 대가를 치르길 원한다. ‘우리 프로그램으로 버는 만큼 내라’는 논리는 ‘가입자당 방송 콘텐츠 대가(CPS:Cost Per Subscriber)’ 요구로 구체화됐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 2007년부터 케이블TV와 위성방송 같은 유료방송 사업자들에 HD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CPS 지불을 요구하고 있다.

 유료 방송사업자들은 이 요구가 과하다는 주장을 고수 중이다. 수입은 뻔한데 CPS를 인정하게 되면 지상파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 늘어나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걱정이다.

 이 같은 대립은 저작권에 대한 개념은 물론이고 체계적인 지불 구조가 없는 데서 비롯된다. P2P 등으로 유통이 되는 콘텐츠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방송 중단 등 강경조치에 ‘시청자를 볼모로 잡는다’는 불만이 곧잘 이어지지만, 대중 역시 아직 돈을 내고 방송을 본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콘텐츠가 유료란 생각이 없는데 합리적인 지불 구조가 마련될 리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저작권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선행되지 않으면 사업자의 이해관계는 계속해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 정리, 인정 범위 등 필요=저작권 분쟁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조정기구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저작권위원회를 비롯해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등이 방송을 비롯한 콘텐츠 저작권 분쟁 시 조정과 중재를 담당한다. 특히 지난 4월 출범한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는 게임, 에듀테인먼트, 방송 영상, 출판·음악·공연의 네 가지 전문 분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전담 기구에도 불구하고 날로 늘어가는 저작권 관리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한류 바람을 탄 콘텐츠의 해외 무단 전송이 말썽이 돼 저작권 위원회가 사무소 설치 등 대비책을 급히 마련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근본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 초 일어난 지상파 HD 방송 송출 중단 사태를 맞으며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사업자 컨트롤마저도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통위는 지난 7월 지상파 재송신 분쟁 해결책으로 ‘지상파방송에 대한 의무재송신 범위 전면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지상파 재송신 제도개선 최종안’을 제시했다. 이후 ‘재송신 협의회와 재송신실무협의회’를 만들어 운영해 왔다.

 하지만 법원이 7월 지상파 재송신 분쟁 항소심에서 지상파의 손을 들어 준 1심을 확정하며 문제가 커졌다.

 지상파 측이 승소 판결에 대한 가집행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케이블 측이 재송신협의회에서 논의했던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 가처분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지상파 측은 재송신협의회 운영 전제 조건으로 해당 협의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소송자료로 제출하지 않기로 케이블 측과 합의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사태가 악화되자 한국방송협회 방송통신융합특별위원회는 “케이블 측이 법원이 내린 결정을 무력화하기 위한 소송전략으로 재송신협의회를 악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어설픈 해결책이 오히려 논란만 키운 셈이다.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은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보편적 시청권의 문제”라며 “어떤 매체를 통해 지상파를 보더라도 방송 중단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을 강하게 주문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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