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에 연결된 줄 하나에 의지한 구조대원이 허공에서 다리를 버둥버둥 움직인다.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찍은 생생한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조마조마하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아찔한 생각도 든다.
그때 화면에서 갑자기 하늘이 지워진다. 헬리콥터도 사라진다. 알고 보니 모든 게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진 화면이었다. 배우들은 허공에 뜬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국내 CG는 별로다’라는 편견도 사라져야 할 것 같다. CG라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이 화면을 채워 넣었다.
한국의 웨타디지털(영화 아바타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뉴질랜드 회사)이 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시각효과(VFX) 전문 연구개발(R&D)센터가 문을 열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CJ VFX/ANIMATION R&D센터’를 찾았다.
“할리우드급 파이프라인(제작공정 관리 툴)을 갖춰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로 임하고 있습니다”
회사 곳곳을 소개하던 김기남 뉴미디어사업팀장은 대뜸 ‘할리우드’라는 말부터 꺼냈다. 이 센터의 목표는 분명했다. 할리우드에서 먹히는 CG를 만들겠다는 것. “아직까지 국내에는 할리우드에서 VFX 제작 의뢰를 받는 곳이 드물어 그 곳처럼 파이프라인(제작공정 관리 툴)을 갖추겠다는 뜻”이라는 설명이 따라 붙었다.
회사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사무실이 2·4·6·12층으로 나뉘어졌다. 12층에는 CG전문 인력 약 80명이 앉아 있는 워크스테이션 모니터에서는 어지럽기 그어진 선, 만들어지다 만 얼굴, 불이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출력되고 있다. 굳게 닫힌 R&D센터 문 안에서는 파이프라인, 가상화 기술, 특수효과 시뮬레이션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약 15명 내외가 앉아 있다. 이 인원은 곧 두 배로 늘어날 예정이다.
특수효과 작업이 이뤄지고 나면 사무실 끝에 붙은 서버실로 데이터가 모인다. 모인 데이터는 영화 제작사로 전달된다. 앞으로 구축하려는 시스템은 미국처럼 원거리에서도 바로바로 화면을 보고 ‘OK’사인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CG는 그때그때 확인(Confirmation)을 받아서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독이 수시로 화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때 보안이 중요하다. 이 회사가 지난 5일 올해부터 5년간 200억원을 들여 콘텐츠 전용 R&D를 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에는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포함됐다.
센터와 더불어 같은 건물에는 영화 색 보정 작업을 할 수 있는 ‘DI(Digital Intermediate)룸’이 위치해 있다. 6층에는 소형 영화관이 꾸며져 있어서 영화 작업 후 최종 시사를 할 수 있다.
3D 영상 제작 장비도 갖췄다. 3D카메라 두 대가 비치됐다. 3D사업팀은 3DTV 제조사의 판촉용 광고, 손연재 선수의 리듬체조 갈라쇼를 3D로 제작한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이호승 CJ파워캐스트 대표는 “콘텐츠 인력을 5년 안에 총 200명 이상으로 꾸릴 예정”이라며 “1년에 매출액 1000억원 이상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