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한마디에 과기부 출신들 짐 싸기 일쑤
26일 원자력안전위 출범하면 과학기술 관련 실지난 2008년 정부 출범과 함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 통합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한 지 3년반여만에 부처 안에서 `과학기술` 관련 조직과 기능이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더구나 인사 등의 측면에서 과기부 출신 직원에 대한 `홀대`까지 겹쳐, 이래저래 교과부 과학기술 관련 공무원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때문에 과학계 인사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남은 과학기술 조직을 교육으로부터 분리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넘기거나 다음 정권에서 과학기술부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과기부 출신 6개월에 한 번꼴 인사..과장 부임 5개월만에 산하기관으로 내쫓겨 = 나름 전문성을 갖췄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전 과기부 출신 공무원들은 교과부로 편입된 뒤 수 개월마다 짐을 싸 이 부서 저 부서로 옮겨다니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17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민주당)이 교과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3월 이후 최근까지 과기부 출신 과장급 이상 공무원 50명의 평균 인사발령 횟수는 무려 7.7회였다. 거의 6개월에 한 번꼴로 인사가 난 셈이다.
또 이들 가운데 고용휴직이나 파견 등의 형태로 교과부 이외 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거나 현재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30명에 달했다. 심지어 같은 기간 두 번 이상 고용휴직이나 파견 발령을 받은 공무원도 9명이나 있었다.
지난 7월말에는 이주호 장관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던 과기부 출신 과장을 돌연 보직 해임하고 고용휴직과 함께 산하기관으로 쫓아냈다. 지난 2월 해당 과를 맡은 지 불과 5개월만이다. 청와대 보고 일정이 외부에 알려진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설명이지만, 교과부 직원들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식 인사 경향은 이상민 의원(자유선진당)이 분석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이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교과부 출범 이후 국장 또는 과장이 6명이상 바뀐 자리(보직)는 모두 12곳인데, 이 가운데 과학기술 관련 보직이 10곳으로 대부분이었다.
10개 보직은 △융합기술과장 △핵융합지원팀장 △기초연구정책관 △전략기술개발관 △원자력국장 △우주개발과장 △연구환경안전과장 △방사선안전과장 △과기인재양성과장 △기초연구지원과장 등이다. 특히 이 가운데 융합기술과장과 핵융합지원팀장의 경우 무려 7차례나 바뀌었다.
안 의원은 국감 현장에서 "부서 안에서 장관이 교육분야와 과학기술 분야 보고를 받을 때 눈빛과 자세부터 다르다는 얘기가 있다"며 "과학기술분야 공무원들이 겉돌고 힘을 내지 못하면 과학기술정책과 연구 현장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쓴소리했다.
◇ 26일 출범 원자력안전위로 46명 빠져나가..올해만 83명 전출 = 교과부 내 과학기술 관련 조직도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교과부에 따르면 오는 26일 원자력 안전규제 독립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출범과 함께 현재 교과부 내 원자력안전국은 사라지고 46명의 국 직원들이 자리를 옮겨 `사무처`로서 위원회 실무를 맡게 된다.
원자력안전국이 빠지면 교과부는 원자력안전규제 관련 주무부처로서의 지위도 함께 잃게 된다. 교과부내 원자력 관련 조직이라고는 연구개발정책실 전략기술개발관 아래 원자력 연구·개발(R&D) 관련 원자력기술과(8명) 하나만 남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지난 3월 `국가 과학기술정책 관제탑`으로서 대통령 소속 국과위가 출범할 당시에도 그동안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해온 과학기술정책실을 해체하고 37명의 관련 인력을 국과위에 넘겨줬다.
결국 올해 들어서만 교과부 과학기술 관련 조직 가운데 1개 실이 해체되고, 1개 국이 완전히 없어지면서 인력 규모가 83명(46+37)이나 줄어드는 셈이다. 동시에 기능 측면에서도 교과부는 과학기술정책 총괄 업무와 원자력안전규제 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뗀 것과 다름없다.
이제 교과부에서 순수 과학기술 관련 조직으로 남은 것은 연구개발정책실(기초연구정책관·전략기술개발관·과학기술인재관) 단 하나 뿐.
대학지원실·국제협력관 등의 관할 업무에도 과학기술 관련 기능과 인력이 포함돼 있으나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기획단·대구경북과학기술원건설추진단·대구광주과학관추진기획단 등은 모두 한시 조직이다.
교과부 내 `과학기술` 위축 현상은 조직 및 인력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2008년 통합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에서 넘어온 인력은 각각 462명, 344명이었다. 그러나 현재 교과부 2차관 관할 조직 가운데 대학지원실을 뺀 순수 과학기술 관련 실·국·단의 인력 규모는 225명이다. 그나마 곧 원자력안전국(46명)까지 빠져나가면 179명으로 줄어든다.
조직 역시 교과부 출범 당시에는 2차관 산하 과학기술정책실과 R&D 중심의 학술연구정책실, 2개 실이 과학기술 조직의 큰 축이었으나, 국과위 출범과 함께 과학기술정책실이 없어지고 R&D 관련 조직으로서 연구개발정책실만 과학기술 전담 조직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과학기술, 국감에서도 `찬밥` = 교과부 안에서 과학기술 부문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은 교과부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달 초까지 진행된 올해 국정감사 현장에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들은 주로 등록금 대책, 대학 개혁 등의 이슈에 집중하고 역사교과서 속 `민주주의` 용어를 놓고 논란을 벌였을 뿐, 과학기술 정책과 미래전략 등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교육과 과학기술을 한데 묶는 현 정부의 `실험`을 실패로 규정하고, 하루 빨리 과학기술 분야를 교육에서 떼어 내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계속 정치 현안과 결부된 이슈를 다뤄야하는 교육과 함께 묶어두면 그 어떤 분야보다 미래를 생각해야하는 과학이 말라 죽을 수 밖에 없다"며 "그나마 남아있는 교과부 내 R&D 관련 조직을 하루빨리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로 옮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과위로의 통합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만큼 강력한 과학기술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민 의원은 "국과위는 분명한 정책 기능 없이 예산 조정권만 갖고 있어 국과위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조직을 합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중심을 바로 잡으려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부총리급 장관을 두고 과학기술에 IT 분야까지 덧붙여 강력한 과학기술부를 부활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