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스마트패드(태블릿PC)가 등장하자 노트북과 대립각이 부각됐고 ‘노트북이 밀릴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노트북이 부진한 몇몇 사례가 나타나자 이런 인식은 ‘믿음’으로 변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시장 전체를 내려다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노트북 시장은 오히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고, 스마트패드와 대립하고 있지도 않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스마트패드는 노트북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트북과 스마트패드는 둘 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GfK코리아 자료를 보면 국내 노트북 판매량은 1~8월 기준 2009년 71만대, 2010년 99만대, 2011년 114만대로 연평균 20만대씩 늘고 있다. 같은 기간 데스크톱PC가 86만대, 84만대, 90만대로 성장 정체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금액을 비교하면 이런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1~8월 기준 노트북 판매금액은 2009년 7800억원에서 올해 1조원대로 2000억원 이상 증가한 반면에 데스크톱은 6700억원에서 6500억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노트북이 고성능화하면서 가정에서 데스크톱이 담당하던 메인 PC 역할을 빼앗아오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1월부터 3월까지 이른바 ‘아카데믹 시즌’ 특성상 노트북이 데스크톱보다 판매량이 월등히 높지만, 4월부터는 판매량 곡선이 교차하면서 데스크톱이 노트북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그러나 올해는 1분기 노트북이 50만대, 데스크톱이 35만대였고 2분기에도 노트북 40만대, 데스크톱 32만대로 노트북 판매 우세가 지속됐다.
올해 1월 집계가 시작된 스마트패드는 8월까지 77만대가 팔리며 114만대인 노트북, 90만대인 데스크톱을 바짝 뒤쫓고 있다. 7월과 8월 두 달만 놓고 보면 스마트패드는 1300억원어치가 팔려 1600억원어치가 팔린 데스크톱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스마트패드가 노트북을 밀어내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반론으로 자주 제기되는 것이 넷북의 침체다. 스마트패드가 전체 노트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넷북 시장에는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다. 다소 제한적인 성능을 갖더라도 작고 가벼운 휴대성을 강조하며 ‘대박’을 터뜨렸던 것이 넷북이다. 가격까지 저렴해 노트북의 대중화를 가져왔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비슷한 컨셉트를 가지면서도 다양한 장점을 갖춘 스마트패드가 등장하면서 넷북은 된서리를 맞았다.
넷북 판매량은 1~8월 기준 지난해 21만대였으나 올해 13만대로 크게 줄었다. 반대로 넷북을 제외한 노트북은 지난해 78만대에서 올해 101만대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넷북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1090억원 어치가 팔렸으나 올해는 570억원 어치를 파는 데 그쳐 실적이 반토막났다.
그러나 넷북 침체 원인이 반드시 스마트패드 때문이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고성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넷북 수요자가 자연스럽게 고성능 노트북으로 옮겨갔다는 분석이다. 김지현 GfK코리아 부장은 “올해 노트북 시장에서는 3D와 엔터테인먼트 기능 강화라는 두 가지 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넷북이 이런 기능을 소화하기는 어렵다”면서 “노트북이 고성능화하면서 성능이 부족한 넷북 수요가 줄어드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체 노트북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노트북 내에서 넷북 비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12인치 이하 모니터 크기를 가진 넷북이 전체 노트북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 19%, 4분기 16%, 올 1분기 11%, 2분기 13%로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월부터 8월까지를 기준으로 하면 2009년과 2010년 21%였으나 올해는 12%에 그쳤다.
노트북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PC 제조사들은 이미 다양한 차세대 노트북을 출시해놓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IFA 2011에서 선보인 ‘슬레이트PC 시리즈7’은 윈도 운용체계를 기반으로 일반 노트북과 유사하지만 외관과 멀티터치 기능 등은 스마트패드와 비슷해 ‘노트북과 태블릿 중간’이라는 평을 받았다. 인텔이 인텔개발자포럼 2011에서 선보인 ‘울트라북’은 얇고 싸면서도 현존 스마트패드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내 도시바 등을 통해 출시될 예정인 이 노트북 역시 스마트패드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크롬북’처럼 클라우드 기술을 이용해 다른 차원의 이용환경을 제공하는 제품도 등장해 소비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유혹하고 있다. 끝없이 진화하는 노트북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미래의 노트북’이 기대된다.
표1. 한국 PC 시장 판매량 추이(단위: 대)
자료: GfK코리아
표2. 노트북과 데스크톱 PC 연도별 1~8월 판매량 비교(단위: 대)
자료: GfK코리아
표3. 노트북과 데스크톱 PC 연도별 1~8월 판매금액 비교
자료: GfK코리아
표4. 전체 노트북 판매수량에서 넷북이 차지하는 비중(단위: %)
자료: GfK코리아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