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특허·플래그십’ 3대 리스크 분석
아직 애플의 ‘위기’를 논하기는 이를 수도 있다. 여전히 미국 정부보다 현금 보유액이 많은 거대 기업인데다, ‘아이클라우드’를 비롯한 새로운 서비스 출시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팬심을 자랑하는 ‘애플빠’ 역시 세계에 있다.
그럼에도 여러 악재에 부닥친 상황인 건 분명하다. ‘CEO·특허·플래그십’ 등 3대 리스크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CEO 리스크=첫 번째가 스티브 잡스의 퇴임에 이은 사망으로 인한 ‘CEO 리스크’다.
애플이 잡스의 부재로 인한 CEO 리스크에 대비할 시간은 적지 않았다. 철저한 ‘비밀주의’에 가리긴 했지만, 지난 1월 잡스가 무기한 병가를 낸다고 발표할 때부터 ‘2인자’였던 팀 쿡은 애플 내부에서 사실상 CEO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아이폰4나 아이클라우드 등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발표할 때 잡스가 연사로 등장하긴 했지만, 이 때부터 팀 쿡과 필립 실러·조너선 아이브·스콧 포스톨을 8명의 수석부사장단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가 가동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CEO 리스크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일단 잡스가 워낙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애플은 자사의 제품을 광고·홍보할 때 톱 모델을 기용한 적이 없다. 잡스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모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잡스가 CEO직에서 물러날 때, 병세 악화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된 것 역시 상징적으로 ‘애플=스티브 잡스’라는 이미지를 계속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대외적인 상징성뿐만 아니라 애플의 제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잡스의 천재적인 영감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작지 않은 악재다. 애플코리아 관계자는 “(잡스가 CEO로 있을 당시) 애플의 의사결정은 8명의 담당 수석부사장들이 자신의 분야와 관련한 내용을 올리면 잡스가 종합해 최종 판단하는 구조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비밀주의가 잘 지켜졌던 이유도 이러한 의사결정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또 세부 제품 사양에 자신의 영감에 따른 내용을 철저하게 관철시키기도 했다. 애플의 한 엔지니어가 “아이포드 첫 모델이 만들어질 때, 유저인터페이스(UI) 설계를 담당했던 일개 엔지니어인 나에게 잡스가 30분 넘게 ‘아름다운 서체’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재작업을 지시했다”고 밝힌 일화는 유명하다.
팀 쿡 CEO가 이끄는 집단지도체제가 잡스의 역량이 지배했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하면 잡스의 부재에 따른 리스크가 당장은 아니지만 이르면 2~3년 후에는 가시화될 수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리서치의 찰스 골빈 애널리스트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잡스 퇴진의 공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면서 “결국 관건은 최종 결정을 해줬던 한 인물이 없는 상태에서 공동 작업을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하느냐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허·플래그십 리스크=특허 문제도 리스크가 될 우려가 높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던 삼성전자에 디자인과 UI로 제동을 걸려고 했던 애플은 삼성전자가 파리와 밀라노 법원에 아이폰4S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면서 외려 카운터펀치를 맞은 모양새다.
애플은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혁신을 주도했지만 원천기술 기반 기업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1993년부터 올해까지 미국과 유럽에 출원한 이동통신관련 특허는 모두 1만1500여건으로 압도적인 1위다. 애플은 같은 기간 3100개에 그쳤다. 또 미 투자회사 제프리스앤코에 따르면 4세대(G) 통신 기술인 롱텀에벌루션(LTE)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인 LG전자(79억달러)다. 애플이 20조원을 넘게 들여 사들인 노텔은 LG전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지난 4일(현지시각) 발표된 ‘아이폰4S’는 아이폰5가 나오기 전까지 애플을 ‘플래그십 부재’에 빠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BCG파트너의 콜린 길린스 애널리스트가 “A5 칩 다는데 16개월이나 걸린 것이냐”라는 비아냥대는 투의 분석을 내놓은 것도, 1년마다 혁신적인 제품을 내오던 애플이 4개월이 더 걸려 내놓은 제품 치고는 상당히 부족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플래그십 라인업 추가 대신 아이폰4S를 내놓은 데는 애플 나름의 전략적 판단도 있다. 고중걸 로아컨설팅 연구원은 “아이폰4S는 △LTE 기반 스마트폰 개화 시점까지 시간 확보 △iOS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징검다리 △iOS 조기 배포와 아이클라우드 확대의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 인하로 인한 중저가 시장 확대도 중요한 포인트로 꼽힌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