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다음에 어떤 PC를 내놓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애플만이 그런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한 대목이다. 물론 이런 궁금증과 우월적 지위의 중심에는 스티브잡스가 있다.
스티브잡스에 대한 평판을 한 마디로 하긴 어렵다. 프레젠테이션의 대가, 맥월드에선 마치 멋진 쇼의 연출자를 방불케 한다.
물론 가장 드라마틱한 요소는 그의 삶 자체다. 20대였던 1970년대 애플을 창업해 이미 억만장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고 타임 표지를 장식했다. 다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으며 1985년에는 넥스트컴퓨터를 `말아먹는가` 싶었지만 픽사로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전설이 된 이 인물은 다시 애플로 컴백했다. 더 큰 성공스토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새로운 성공스토리가 시작된 건 1996년 12월이다.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지 11년만의 일. 스티브잡스가 복귀할 당시 애플은 연간 10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를 짊어지고 있었다. 60달러를 상회하던 주식은 17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사회는 매각까지 고려해야 했다. 전문가들 모두 애플이 쇠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잡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애플 엔지니어를 모두 모아놓고 "이 제품의 문제가 뭔지 아냐? 모두 쓰레기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50개에 이르던 연구 개발 프로젝트는 곧 10개로 줄었다.
물론 분위기만 잡는다고 회사가 사는 건 아니다. 1998년 스티브잡스는 화려한 색감을 곁들인 일체형 PC 아이맥을 내놨다. 지겨운 회색을 걷어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새로운 사업 발판을 마련한 그는 P2P 음악 프로그램인 냅스터에 주목한다. 1999년 한 대학생이 공개한 이후 냅스터는 일주일만에 50명에서 2,000명, 다시 한 달 뒤엔 1만 명, 1년 뒤에는 전 세계 6,000만 명에 퍼지는 당시까지 유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냅스터는 결국 저작권 문제에 발목이 잡혔지만 스티브잡스는 디지털 음악 혁명에 주목했다.
스티브잡스는 매킨토시에 CD를 넣고 파일로 만들게 하더니 2001년 맥월드 엑스포에선 아이튠즈를 발표, 애플이 디지털 음악 산업에 발을 들여놨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킨다.
하지만 아이튠즈는 시작에 불과했다. 신화가 시작됐다. 아이팟이다. 그는 "10년 후 애플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음반 회사가 될 것"이라며 개발팀을 독려했다. 그는 아이팟을 만들면서 그의 제품 철학 가운데 하나인 `단순함`을 수없이 강조했다고 한다. 버튼 반응 속도는 물론 클릭 3번이면 원하는 음악을 찾으라는 주문도 쏟아졌다.
2001년 10월 스티브잡스는 아이팟을 공개했다. 그가 한 첫 마디는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맥은 아닙니다."
스티잡스는 다시 2003년 4월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곳은 미국 5대 메이저 음반사가 공급하는 20만곡을 확보했다. 결과는? 5일 만에 100만 곡 이상을 팔아치운다. 아이팟도 순항을 거듭했다. 출시 2개월만에 12만개, 18개월만에 7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2005년 당시 아이팟 판매량은 3,200만 개에 이르렀고 미국 MP3 플레이어 시장의 75%를 장악했다. 음원 판매 매출은 타워레코드를 추월했다. 아이팟 액세서리 업계 규모는 연간 10억 달러를 넘겼다.
2007년 6월 애플은 그간 소문만 무성하던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아이폰이다. 스티브잡스는 "아이폰은 다른 모든 휴대폰보다 5년은 앞선 혁신적이고 마술 같은 제품"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멘트를 날렸다. 그의 말처럼 아이폰은 승승장구, 지난 2010년 누적 판매량 5,000만 대 고지를 넘었다. 매달 147만 대 이상을 팔아치운 셈이다. 앱스토어 누적 다운로드 횟수 역시 40억 회를 넘겼다. 시장조사기관 SA에 따르면 애플은 이 단일 모델만으로 2010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4.4%를 차지했다.
2010년 1월 27일 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스티브잡스는 "이제 애플은 모바일 회사"라며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그는 제품을 공개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제품이 될 것"이라며 애플 마니아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그래서인지 아이패드는 1년 만에 1,900만 대가 팔려나갔다.
신화를 멈추게 한 건 그 바로 자신이다. 스티브잡스는 올해 1월 자신의 병가 소식을 알렸고 휴직 계획을 내놨다. 결국 2011년 8월 24일 CEO 자리를 팀쿡에게 넘기면서 일선에서 물러났고 10월 5일(현지시간) 애플 이사회는 성명을 통해 스티브잡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스티브잡스는 "혁신이라야 말로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Innovation distinguishes between a leader and a follower)"라고 강조해왔다. 혁신가를 잃은 애플은 물론 전 세계 IT 업계가 어떤 식으로든 후폭풍을 앓게 될 것으로 보인다.
eBuzz 이석원기자 lswcap@ebuz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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