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이 제작해 납품한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권, 복제·배포·전송권을 비롯한 모든 저작권은 ‘갑’이 소유한다.
#‘을’은 프로그램 제작 과정 및 방송 후 프로그램 내용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민사, 형사상의 책임을 진다.
#다음 각호의 사유가 발생할 경우 ‘갑’과 ‘을’은 별도의 최고 없이 상호 서면통보 함으로써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6호, ‘을’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중략) 사회적으로 물의를 야기하거나 방송위원회로부터 심의 제재를 받은 경우
KBS·MBC·SBS가 외주제작사와 체결한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들이다. 문구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비슷한 조항이 들어있다.
지난달 KBS ‘스파이 명월’ 결방 사태로 드라마 제작여건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불공정 계약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외주제작 중 출연료 미지급분이 15억25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근 3년간 코스닥 상장사 기준 독립제작사 중 4곳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안 의원은 “근본적으로 제작사가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외주제작사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제작비 과소지급(寡少支給), 제작사 난립, 배우·작가의 몸값 상승, 광고 환경 개선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전형적인 ‘갑·을’ 관계다. 업계 표준계약서가 없는 상태에서 각 방송사가 관행적으로 쓰고 있는 계약서에 따라 계약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건 외주제작사지만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방송사가 갖는다.
방송에 쓰이는 음악·소품·의사 등에 대한 저작권, 공연에 대한 저작인접권 등은 외주제작사가 확보해서 방송사에 넘겨줘야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에 따르는 권리는 왕서방이 갖는 셈이다.
제작비가 현실보다 낮게 책정되는 것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제작할 때 지급하는 제작비는 실제 소요 경비의 50%가량이다. 거기다 제작사가 난립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배우·작가의 몸값이 치솟아 경비는 종전보다 더 늘어났다.
외주제작사 업계 관계자는 “방송사에서 인기 배우·작가를 선호하기 때문에 몸값 경쟁이 심하다”면서 “그렇게 불어난 부담은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제작사는 이렇게 부족한 비용을 ‘협찬고지’ 형태의 광고로 메우게 된다. 지금까지 간접광고(PPL)는 방송사가, 협찬고지(프로그램 시작과 끝에 화면 하단에 붙는 기업 광고)는 외주제작사만 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최근 정부에서는 협찬고지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수도권 지상파 3사를 제외한 지역민방 등은 협찬고지와 PPL을 모두 할 수 있게 했다. 반면에 외주제작사에 PPL을 허용하는 방안은 방송법에 규정돼 있어 국회 통과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방통위 관계자는 “일단 지상파 3사에 대해서는 협찬고지를 허용하지 않았고, 방송법 개정안도 입법 발의된 상태”라며 양측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드라마제작사협회 측에서는 “방송사-외주제작사 양쪽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 결국 영향력이 큰 방송사가 외주제작을 줄이고 광고도 독식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불공정거래 관행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하지만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문화부는 외주제작 표준계약서와 제작비 산정 및 저작권 분배 기준 등을 마련키로 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최근 3년간 코스닥상장사 기준 독립제작사 매출과 당기순이익>
(자료: 안형환 의원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