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스티브 발머, 빌 게이츠, 마크 베니오프, 스콧 맥닐 리.
이들 IT산업 거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IT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독설가’로 유명하다. 경쟁자에게 가차없이 쓴소리를 던진다. 때론 자신이 몸 담았던 ‘친정’ 기업에도 거침없는 질타를 날린다.
이들의 깜짝 발언들은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리곤 어록으로 남아 계속해서 업계에서 회자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전 CEO는 자사 제품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포르노를 보고 싶다면 안드로이드폰을 구입하라”고 되레 큰소리 친 일화도 유명하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CEO는 “소프트웨어는 끝이다”고 말해 업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들은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오히려 전략적 기회로 활용했다. 자극적인 표현들을 자주 썼지만 주장은 상당히 논리적이었다. 단순한 분노의 표출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 또한 귀를 기울였다.
사실 독설은 쉬워 보이지만 칭찬보다 어렵다. 독설을 하려면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선 충분한 학습과 조사가 필요하다. 근거가 충분치 않으면 전문성이 없다느니, 시장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소릴 듣기 쉽다.
우리나라 IT 업계엔 이러한 독설가가 없다. 격한 IT 시장의 움직임 속에, 또는 이슈의 중심에 누군가는 없었다. 독설가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 피력하고, 조언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쟁 업체 얘기는 애써 꺼려하고, 자신의 주장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오길 기다릴 뿐이다. 즉, 악역을 자체하는 사람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만큼이나 독설을 퍼붓는 심사위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시험대에 선 참가자들에게 비수 같은 말을 던진다. 하지만 이는 분명 독보다는 약이 되게 마련이다. 그 모진 역할을 자임한 것이 이들이다. 참가자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위대한 탄생의 방시혁은 “독설도 애정이 있어야 나온다”고 했다. IT거물들도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계속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데는 그만큼 산업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IT업계에 독설가가 필요한 이유다. 비난과 비평을 구분할 수 있는 독설가라면 언제든 환영해야 마땅하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