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에 美 더블딥 우려로 `악순환`
세계경제 암울..한국 성장전망치 잇단 하향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제의 회복지연에 따른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대외경제 변수가 단기적인 리스크에 그치지 않고 상시화하면서 한국 경제는 짙은 안갯속을 걷는 형국이다. 성장률 전망치도 일제히 급전직하하는 흐름이다.
◇양대 경제권發 대외 리스크 `상시화`
세계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두 가지 변수는 유럽의 재정 위기와 미국 경제의 `더블딥`(경기가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하는 현상) 가능성이다. 이들 선진국 경제의 불안한 모습은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는 모양새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국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미국의 더블딥에 대한 불안 심리는 다시 유럽의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유럽의 신용위기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세계의 중앙은행` 격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세계 경제가 위험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경고하며 국제공조를 통한 위기 타결을 호소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5일 미국 워싱턴DC 윌슨센터 연설에서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을 없애기 위해) 집단적이고 과감하며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며 "이런 조치가 없이는 주요국들이 후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OECD는 최근 G7(주요 7개국) 경제전망 중간평가 보고서에서 G7 경제가 전반적으로 지난 5월의 전망보다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하반기에도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OECD는 회원국들에 정책금리 인상을 자제하고 경기침체가 이어질 경우 금리를 다시 내리는 방안과 중앙은행의 자본시장에 대한 개입 등을 권고하는 등 강도 높은 처방전도 제시했다. 현재의 상황을 좌시할 경우 주요 경제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큰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유럽"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그리스에 국한한 단발성 악재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 국가로 번지면 2008년 리먼 브러더스 붕괴 사태에 버금가는 파문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이탈리아 등 다른 남유럽 국가에서 경고음이 잇따르고 재정위기가 은행위기로 확산되면서 유럽 단일통화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악재에 한국의 금융·외환시장은 수시로 흔들리고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 외화채권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12일 154bp(1bp=0.01%)로 작년 5월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자 정부가 1년 5개월만에 외환시장에 대해 공식 구두개입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주식시장에서는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자금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신석하 거시동향분석팀장은 "그리스가 극단적인 경우(디폴트)로 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며 "유럽 국가들과 유럽중앙은행(ECB) 등 국제기구들이 그리스 디폴트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장률 전망 줄줄이 `하향`..올 한국경제 3%대 전망도 나와
이런 불확실성에 따라 주요 예측기관 사이에서 세계경제는 물론 유럽, 아시아 등 주요 경제권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려잡는 분위기가 뚜렷해졌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유로존 17개국의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이 각각 0.2%, 0.1%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3월 전망치(3ㆍ4분기 각 0.4%)보다 크게 낮아진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일본을 제외한 45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7.8%에서 7.5%로 하향조정했고, 내년 성장률도 앞서 발표한 7.7%에서 7.5%로 낮췄다.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와 국제금융시장과 밀접하게 연동된 금융·외환시장을 가진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도 하향조정되고 있다.
ING그룹은 최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의 4.7%에서 4.2%로 하향 조정했고, 스탠더드차타드(SC)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5%로 내리고, 내년 전망은 4.8%에서 4.0%로 대폭 낮췄다.
국내 경제연구기관들도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기 시작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5일 올해 전망치를 기존 4.3%에서 4.2%에 낮췄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떨어진 4.0%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4.1%, 내년 4.3%로 전망한 LG경제연구원 역시 이번 주 중에 하향조정한 수정치 발표를 저울질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3% 후반, 내년은 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표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KDI 역시 올해 4.2%, 내년 4.3%였던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의 하향조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KDI의 신석하 거시동향연구팀장은 "지난 5월에 성장률을 전망할 때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봤는데 그동안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경제가 둔화한 모습을 보여 (전망치 수정에) 반영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올해와 내년 모두 4% 내외로 전망치를 낮추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리스 사태 해법 등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돌파구가 도출되느냐에 따라 영향이 크게 달라지므로 성급히 우리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현 단계에서 적절한 수준의 해법이 나온다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처럼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지난 6월만 해도 4.8%로 봤던 내년 성장률 전망을 이달 들어 4%대 중반으로 사실상 낮춰잡았다. 정부의 공식적 전망치 수정은 이르면 이달말 발표하는 세입예산안에 담길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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