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커스]게코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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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산물 중에는 자연현상을 응용한 것들이 적지 않다. 붙였다 뗐다하는 일명 ‘찍찍이’는 산우엉 가시를 응용했다. ‘압축 벽걸이’는 바닷가 바위에 달라붙은 삿갓조개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대장내시경 장비는 몸을 구부리며 이동하는 자벌레의 생태를 보고 개발했다고 한다.

 자연계 구조물이나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모사(模寫)해 생활이나 산업에 응용하는 학문 분야가 ‘생체모사공학(biomimetics)’이다. 최근 생체 모방 소재로 각광받는 생물이 게코도마뱀이다.

 ◇마법의 발바닥=도마뱀과 파충류 게코도마뱀이 연구되는 이유는 신기한 발바닥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게코도마뱀 발바닥 비밀을 밝혀냈다. 가느다란 털 형태의 수많은 섬모를 가진 발바닥은 섬모와 벽면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반데르발스 상호작용)으로 경사면에서도 몸체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한다.

 발바닥은 길이 50∼100마이크로미터(μm), 지름 5∼10μm인 수백만개 강모로 덮여 있다. 하나의 강모는 수백개에 달하는 주걱 모양의 섬모(길이 1∼2μm, 지름 200∼500나노미터)로 갈라진다. 이들 섬모의 개별적 접착력은 약하지만 수억개가 합쳐지면 도마뱀 무게 수십배도 견딜 수 있다. 빨판이나 끈적이는 물질이 없는 게코도마뱀 발바닥은 오랜 시간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돼 왔다.

 ◇접착력 응용 쏟아져=게코도마뱀 발바닥은 기존 접착제 대체소재 개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지난 2006년에는 미끄러운 벽을 빠르게 올라가는 도마뱀 로봇, ‘스티키봇(Stickybot)’이 타임지가 뽑은 최고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연구진은 탄소나노튜브 털로 덮인 고분자 표면을 이용한 인공 게코테이프를 개발했다.

 진공환경에서 작업이 요구되는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를 옮길 때 효과적 활용도 가능하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기판은 보통 집게로 집거나 정전기로 흡착해 옮긴다. 하지만 집게로 옮기면 기판 표면이 긁히거나 휘기 쉽다. 정전기 이송도 전기가 흐르는 소형 기판만 가능한 한계가 있다. 게코도마뱀을 응용한 테이프는 기판에 흠집이나 불순물을 남기지 않고 기판을 붙여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연구들은 모두 유리와 같이 매끄러운 표면에서의 접착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도마뱀 테이프를 거친 피부에 붙이는 의료용 패치나 극한 환경용 접착제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응용의 진화=서갑양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도마뱀 접착력을 의료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포문을 열었다. 피부는 유리와는 달리 거칠고 땀과 각질을 분비해 기존 게코도마뱀 접착기술로는 접착력을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서 교수팀은 기존 100만분의 1밀리미터 크기 인공 섬모를 새로운 제작 방법을 통해 1억분의 1밀리미터까지 가늘게 했다. 접착제 없이 피부에 부착 가능한 의료용 건식 접착 패치를 개발한 것.

 특히 개발한 피부접착용 접착제는 접착 대상표면의 거칠기에 대한 최적 구조를 찾아내 접착제를 제작 할 수 있다. 때문에 기존 건식 접착제가 사용될 수 없던 거친 표면에도 적용 가능하다.

 실제로 제작된 건식 접착 패치로 센서를 피부에 부착하고 24시간동안 심전도 검사를 실시, 심장 박동 정보를 성공적으로 측정했다.

 서 교수는 “개발한 의료용 피부 접착 패치는 접착력 수준이 기존 접착제에 다소 못 미치지만 실시간 검진이나 유비쿼터스 분야에서 활용가치가 높다”며 “향후 약물 전달과 치료용 패치 기술 등과 접목돼 의료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분야 이외에도 정밀 전자 산업, 생활용품 등 실생활 전반에 걸친 응용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는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게재되는 한편 과학 저널 ‘네이처’에도 소개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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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슬러공대와 아크론대 연구자들은 탄소나노튜브 털로 덮힌 고분자 표면을 이용해 실제 게코보다 4배나 접착력이 강한 인공 게코 테이프(gecko tape)를 개발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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