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벤처가 안되는 이유

 “이스라엘은 벤처 기업 육성을 위해 군 조직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세계 최고의 벤처창업국가가 됐다. 이를 본 싱가포르가 이스라엘을 벤치마킹했다. 군 조직을 이스라엘처럼 네트워크형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3만5000달러를 넘을 정도로 재정이나 주변여건이 양호했지만 벤처창업 문화를 배양하는 데는 실패했다. 왜?”

 윤종록 벨연구소 특임연구원(전 KT 부사장)이 번역한 ‘창업국가’에 나오는 대목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저자 댄 세노르와 사울싱어는 그 이유로 ‘창의성’과 위험을 감수하려는 ‘리스크 테이킹’ ‘민첩성’ 세가지가 부족했다는 답을 내놨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중심축인 대덕연구단지서 봐도 싱가포르의 사례는 수긍이 간다. 우리나라 벤처는 안 된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과학기술 현장서 벤처가 잘 안 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대략 여섯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우선 엔젤투자가 다 죽었다. 벤처캐피털만 일부 움직일 뿐 최근 과학기술계서 엔젤투자를 받았다는 사례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대덕연구단지내 일부 기관에서 연구원들이 십시일반 투자했다 이권개입으로 모두 검찰의 조사를 받고, 징계를 받은 이후 창업도 투자도 모두 시들해졌다.

 이스라엘은 정부가 나서 벤처기업에 50%, 미국은 벤처캐피털에 50% 자금을 대줘 시장을 개척토록 하는 방식을 취할 만큼 벤처 시장개척 지원에 적극적이다.

 마케팅 부문에선 경영전문가가 따로 있다는 걸 연구원들이 잘 인정하지 않는다. R&D 전문가는 수십 년 연구해온 연구원이듯 경영전문가는 경영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주먹구구식 가족기업처럼 운영하던 시대는 지났다.

 기술에 대한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벤처 성공요인 가운데 기술은 10% 미만이다. 마치 세계최초의 기술이라고 세계시장을 점령한 듯해선 절대 안 된다.

 벤처제품에는 하자도 있다. 대부분 2% 함량 미달인 제품이 많다. 더욱이 AS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기업은 벤처기업 부품에 소극적이다. 하자에 대한 리콜 사태가 두렵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부품을 검증하고, 평가한 뒤 인증해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감리시스템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

 벤처하다 망하면 재기하기 정말 어렵다. 주위를 둘러봐도 재기에 성공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열심히, 목숨 걸고 할 테니 실패하더라도 쉽게 일어설 기회를 제공해 달라.” ETRI의 한 예비창업자가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며 토로한 이야기다. 정부부터 리스크테이킹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 더 이상의 벤처 붐은 없다.

 창업이 별건가. 연구원들의 단점인 기술력을 뒤집어보면 언제든 어떤 제품이든 만들 기본 기술은 있다는 얘기다.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게 안 되면 정부 지원을 받아 다시 다른 품목을 찾으면 된다. 벤처가 활발해져야 국가경제에 활기가 돈다.


박희범 전국취재팀 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