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성 인증 도입…가전·IT 업계 위기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기반 셋톱박스에도 호환성 인증(CTS) 도입을 추진하면서 TV를 비롯한 가전산업에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 IT산업이 ‘구글 리스크’에 매우 취약하다는 자성은 물론이고 국내 산업 위기에 대한 보다 면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개방형 소프트웨어(SW)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산업 기반 자체가 구글의 정책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경쟁력을 갖추고도 SW 독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IT코리아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높아가고 있다.
◇구글 ‘재채기’에 IT코리아 ‘몸살’=구글 리스크는 모토로라모빌리티를 인수로 급부상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폰 업계 잠재 경쟁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최근 “모토로라 인수가 단순히 특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관심도 포함된다”며 이 같은 우려를 간접적으로 시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 콘텐츠 개발사들도 ‘구글 리스크’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구글이 지난 달 무료로 제공해온 번역 프로그램 API를 유료로 전환한데 이어 구글 지도도 상업용으로 활용하면 유료 과금에 나서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 유료화는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1인 개발자에도 적용된다. 구글 지도를 활용해 위치기반 서비스를 개발 중인 한 개발자는 “구글이 제시한 유료화 요금은 연간 최소 1000만원에 달한다”며 “1인 개발자들은 사실상 구글 지도를 활용한 앱을 만들 수 없는 구조가 됐다”고 토로했다.
셋톱박스업체 연구소 한 관계자는 “셋톱박스에도 구글 인증이 도입되면 스마트폰·스마트패드·스마트셋톱박스에 이르는 스마트 산업 전체가 구글 정책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내몰린다”며 “대안 OS나 앱스토어 생태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스마트TV·IPTV 최대 위기=구글이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에 이어 스마트셋톱박스로 안드로이드 외연을 넓히면서 우리나라 차세대 TV산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구글이 셋톱박스 CTS 인증을 우려와 달리 느슨하게 운영하더라도 더 문제라는 전망도 쏟아진다. 진입 장벽을 낮춰 안드로이드 셋톱박스 저변을 확대하면 국내 스마트TV와 IPTV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톱박스업체 한 사장은 “안드로이드 셋톱박스는 수십만개에 달하는 앱과 콘텐츠를 보유한 ‘안드로이드 마켓’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며 “안드로이드 셋톱박스 확산은 당장 콘텐츠 수급난에 허덕이는 통신사 IPTV 사업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독자 플랫폼으로 스마트 TV 사업을 펼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안드로이드 OS를 도입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스마트폰·스마트패드와 마찬가지로 OS와 SW에서 구글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SW업체 한 사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구글처럼 독자 OS를 만들 능력이 안된다는 패배주의에 사로 잡혀있는 것도 문제”라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HTML5와 같은 차세대 웹 표준에 맞춘 웹 기반 OS를 개발하는 등 대안을 만들지 않으면 SW나 OS 주권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지영·배옥진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