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위키리크스 시대 "나는 폭로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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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는 보유 중인 미국 외교문서 25만1287건을 편집 없이 모두 공개했다. 공개된 외교문서는 지난 1966년 12월 28일부터 2010년 2월 28일까지 미국 국무부와 재외공관이 주고받은 외교전문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이란·아프가니스탄 등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도 포함돼 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해 11월부터 매일 차례로 미국 외교문서를 공개해왔다. 그동안은 편집 과정을 거쳐 제보자 정보를 가려왔지만 이번에 공개된 대량 문건은 편집 과정이 없어 제보자 실명이 모두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전문 중 제보자 실명이 나타난 것은 1000건 이상이며 그 가운데에는 내부고발자로 언급된 150명 이상의 실명도 포함됐다.

 위키리크스와 공조하며 전문을 보도해온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스페인 엘 파이스, 독일 슈피겔 4개 언론사는 공동성명에서 “편집하지 않은 채 외교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 결정을 개탄한다”며 “정보 제공자를 위험에 빠Em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폭로’의 시대다. 위키리크스로 촉발된 폭로 혁명이 인터넷을 휩쓸고 있다. 처음 위키리크스가 등장했을 때 세계 언론과 대중은 환호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언론 차원에서 처음 겪는 큰 사건”이라고 했으며 미국 뉴욕타임스는 “위키리크스는 알 권리를 충족하고 공공 이익에 이바지한다”고 논평할 정도였다.

 실제로 위키리크스는 기존 언론매체가 충족시킬 수 없는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정보 자유와 지식 공유’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키리스크는 언론 역할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위키리크스 행보를 보면 이 폭로가 언제, 어디까지 흘러갈지 의구심이 생긴다는 것. 위키리크스가 ‘또 하나의 권력’이 돼버렸다는 얘기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누구=위키리크스 폭로 배후에는 줄리언 어산지가 있다. 그는 언론 자유와 정보검열 반대를 주장해 온 호주 출신 유명한 해커로 위키리크스를 통해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줄리언 어산지는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그는 디지털 시대 구세주인가, 아니면 사이버 테러리스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보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 선구자인가, 권력욕에 불타는 저널리스트인가.

 조직의 리더로서 어산지의 진술과 행동은 매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는 현재 성추행과 폭력 혐의를 인정받아 독일 자택에 구금돼 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위키리크스 전 조직원은 “줄리언 어산지처럼 극단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그는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천재적이며 권력에 사로잡혀 있지만 편집증에 과대망상증까지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최근 미국 CBS와 인터뷰를 했다. 그의 성향이 가장 잘 나타난 인터뷰였다. 그는 미 법무부가 ‘국가 안보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기소할 것이라고 밝히자 “위키리크스는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했던 미국 건국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며 “미국 전통을 노골적으로 묵살하는 미 법무부 행위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 국무부에 비밀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권력 남용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체제 전복적인 사람이냐”는 질문에 “위법적인 권력에는 그렇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반미나 반역자, 선동가는 아니다”며 “그러한 시선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명과 암=위키리크스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부수적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폭로된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살해 동영상이었다. 미 국무부 기밀문서 25만건도 세계 권력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위키리크스는 올해 초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 불씨를 제공했으며 튀지니·이집트에서도 시민 혁명을 촉발한 매개체로 불린다.

 위키리크스는 설립 후 3년간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0년 동안 한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생산해냈다.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피랍된 유조차 2대에 대한 폭격, 아이슬란드 금융붕괴를 초래한 카우프싱 은행 약탈 행위, 사이언톨로지의 비밀 등 위키리크스가 공개하지 않았다면 많은 진실이 그대로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익명의 제보자에 의존하고 그의 신상정보는 비밀에 부쳤던 위키리크스가 변했다. 최근에는 제보자 보호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좀 더 거대하고 자극적인 폭로에만 치우쳐 있다. 지난달 공개했던 문건에서도 필터링을 하지 않고 고스란히 폭로해 최다 1000명이 넘는 사람의 실명이 그대로 인터넷에 떠 있다. 이들의 안위는 보장할 수 없는 셈이다. 세계 이목을 끌긴 했지만 정작 제보한 개개인과 기업, 그리고 내부 고발자는 또 다른 사회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인터넷발 무차별 폭로,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위키리크스가 민주주의에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아직까지 사람들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하는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위키리크스 역할, 특히 단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지난해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위키리크스 초기 운영 원칙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내부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팀은 해체됐다. 여러 대형 폭로 이후 위키리크스 자체가 하나의 거대 권력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위키리크스 반대 세력들은 사이트 태생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학자인 헤르프리트 뮌클러는 “비밀이 항상 특정 권력의 손에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며 “비밀 보관자만 바뀐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이 보관하던 비밀을 이제 줄리언 어산지와 거대 언론사가 보관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손에 의해 세계 비밀이 좌지우지된다.

 올해 위키리크스는 2011 노벨평화상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1세기를 맞아 언론 자유와 투명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상시켰다는 취지에서다. 위키리크스에는 어떤 문서들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지, 앞으로 어떤 문서들이 폭로돼 세상을 바꾸어놓을지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아직 폭로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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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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