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라고 자랑하던 전자정부 예산이 1000억원 미만으로 줄어든다.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다.
24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내년도 전자정부지원사업 예산이 최근 7년 만에 최저치인 1000억원을 밑돌 전망이다.
행안부는 지난달 끝난 제1차 내년도 예산심의 때 올해와 비슷한 수준인 1300억원가량을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명했다. 기획재정부가 통보한 전자정부 예산은 890억원이다. 이는 올해 대비 31.9%나 급감한 액수다.
현재 전자정부지원사업은 이른바 ‘문제사업’으로 분류돼, 재정부의 2차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제시액과의 간극이 워낙 커 행정안전부 요구안의 대폭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올해부터 본격 추진 중인 ‘모바일 전자정부’의 대민 확산과 기반인프라 사업의 지속 확충, 여성·사회적 약자 지원체계 구축 등을 위해 증액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년도 수준의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재정부는 전반적인 긴축 기조 속에서 가시적·단기적 성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정보화 부문에 예산 편성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양 부처는 이르면 금주 안에 2차 심의를 마치고, 2012년도 전자정부 예산액을 확정한다.
<표> 전자정부 예산 증감 추이
<자료: 행안부>
▲뉴스의 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전자정부사업 투입 예산은 지난 2007년 2900억원을 정점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 이듬해 바로 1450억원으로 급락한 뒤 매년 감소세다. 급기야 현 정부 마지막 해인 내년에는 1000억원 미만으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2001년 전자정부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전자정부법이 제정되면서 11대 중점과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전자정부사업이 시작된 이래 사상 최저액이다.
대한민국 전자정부 위상에 심각한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 최근 일본 총무성이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정보통신기술 기반 및 활용도 평가’ 결과, 한국은 ‘개인의 활용도’와 ‘모바일 환경보급’ 부문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기존 유선네트워크 보급률이나 정부 주도의 활용도 등의 견인으로 전체적으로는 ‘종합 1위’라는 모양새는 지켰지만, 실제로 국민이 체감하는 편리성이나 차세대 주력분야에선 모두 경쟁국에 뒤졌다.
전자정부사업이 ‘다부처 연계사업’이라는 점은 관련 예산 확보에 걸림돌이다. 행정안전부가 해당 예산을 확보해도, 이를 다른 부처나 기관에 바로 넘겨줘야 한다. 실례로 올해 전자정부 사업 가운데 최대 규모인 ‘공간정보 융복합 서비스’ 사업의 예산 300억원은 대부분 국토해양부로 돌아갔다. 55억원 짜리 ‘국가 외교정보통합관리체계 구축’ 사업 역시 외교부 몫이다.
행정안전부 내에서도 전자정부 예산이 늘어나는 것을 반기지만은 않는다. 한 쪽의 예산이 늘어난 만큼 다른 쪽의 예산이 줄어드는 예산한도액(실링) 제한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기획재정 담당 관계자는 “손도 못 댈 전자정부 예산이 커질수록 그만큼 타 사업 예산은 줄어들게 마련”이라며 “우리 부 예산한도액이 고정돼 있어 전자정부 예산확대를 고집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예산 당국과 국회를 상대로 한, 부 차원의 전폭 지원이나 적극적인 로비가 유독 전자정부 사업에 인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권헌영 광운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 전자정부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4~5년 전 선행된 투자의 결과물”이라며 “지금과 같은 예산지원 감소는 향후 5년 내 심각한 위상 하락으로 현실화될 개연성이 짙다”고 우려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