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는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에 이어 HP PC사업 분사라는 거대 이슈에 흥분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 기업이 휴대폰 제조사를 인수하고 전 세계 1위 PC 사업자가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IT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플랫폼’이란 단어를 흔하게 접할 것이다. 플랫폼은 다양한 시스템을 얹는 기반이란 뜻이다. 최근 IT업계에서는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비즈니스 기반이자 최소 노력으로 무한 확장이 가능한 ‘생명체’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세계 IT시장은 플랫폼을 둘러싼 생태계 조성 전쟁이 한창이다. 맥북과 아이팟으로 조용히 생태계를 형성해온 애플이 아이폰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플랫폼 전쟁 서막이다. 스마트폰 시장을 둘러싼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싸움은 스마트패드(태블릿PC) 등 IT기기를 넘어 TV·셋톱박스 등 가전시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강자만 살아 남는다’ 다양성 없애는 플랫폼 싸움=플랫폼을 둘러싼 경쟁은 인터넷 상 웹이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본격화됐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모든 기기가 웹으로 연결되는 추세가 가속화 되면서 다양한 기기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구현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애플이 촉발한 플랫폼 경쟁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세계 IT기업을 양분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노키아 심비안OS, 마이크로소프트 윈도OS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과거 명성을 잃고 있다. 사용자가 적은 운용체계를 개발자가 택할 리 없고,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적어지면 사용자와 제조사가 모두 외면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애플은 iOS를 중심 플랫폼으로 삼고 아이팟·맥PC·아이폰·아이패드에 이어 TV까지 연동하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애플 플랫폼에서 사용자들은 많은 기기를 사용할수록 타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힘들어진다. 구매한 콘텐츠는 이종 플랫폼과 호환되지 않는데다 애플 특유 사용자경험(UX)에 익숙해질수록 타 플랫폼으로 갈아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 플랫폼으로 전환에는 일정 시간과 비용 소요가 필요한 것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도 같은 전략이다. 여러 제조사가 안드로이드를 탑재할수록 검색 서비스 지배력이 높아지는 데다 인터넷 기반 다양한 서비스를 더 많은 사용자에게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생태계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양 진영은 향후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TV를 비롯해 냉장고·세탁기 등 소비가전에 네트워크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네트워크 세상이 열릴 것으로 보고 단순 IT기기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영역 확대를 꾀하고 있다. 검색 기업 구글이 무인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열 재정비하는 글로벌 IT기업들=플랫폼 전쟁은 다양한 분야 글로벌 IT기업들이 사업을 재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HP와 구글의 사업구조 재편 원인도 플랫폼 경쟁에서 기인한다. 애플만의 폐쇄적인 플랫폼 전략을 바탕으로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기존 모바일PC와 TV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글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기대지 않고 최적의 레퍼런스폰을 만들어 아이폰과 경쟁하기 위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HP는 막대한 신규 투자와 치열한 경쟁이 필요한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시장이 아닌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집중할 뜻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IT 대기업들의 사업 구조 정비와 재편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이 고유 플랫폼을 바탕으로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시장에서 놀랄만한 성공을 이뤘고 이를 기존 PC 사업뿐만 아니라 TV 등 새로운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야심은 앞으로도 빠르게 각 산업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 구도를 바꿔놓을 전망이다.
애플이 야기한 시장 변화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우선 아이폰 성공은 세계 휴대폰 시장 구도를 재편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면서 글로벌 휴대폰 강자인 노키아와 RIM이 애플과 삼성전자에 선두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스마트폰 OEM을 위주로 하던 HTC는 세계 5위 사업자로 부상했다. 스마트폰 운용체계에서 경쟁해온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해 대표 구글폰을 생산하고 아이폰 대항마로 삼겠다는 전략도 이와 맞닿아 있다.
아이패드는 스마트패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한 대표 제품으로 급기야 글로벌 1위 PC 기업 HP까지 움직였다. 아이패드가 이끈 스마트패드는 넷북·노트북PC의 새로운 경쟁상대로 떠오르면서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HP가 스마트패드와 웹OS 스마트폰 생산 중단을 결정하게끔 만들었고 삼성전자·델 등 기존 PC 제조사들이 스마트패드 사업 비중을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제 애플은 차세대 맥북에어와 맥 컴퓨터용 운용체계 ‘라이온’을 통해 기존 PC시장에서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셋톱박스 형태인 애플TV가 정식 스마트TV로 출시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어 세계 TV 제조사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국내 기업들, 플랫폼 만들고 SW 인력 늘리고=애플 아이폰으로 휴대폰 사업에서 직격탄을 맞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와 고유 플랫폼 육성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양사는 우선 새롭게 성장하는 스마트TV 산업이 새로운 플랫폼 경쟁 시대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각기 폐쇄적인 고유의 스마트TV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자사만의 경쟁력 있는 애플리케이션 확보와 다양한 기기 연동 등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토대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SW 개발 역량을 갖춘 전문 인재 육성과 확보에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이다. 업계 전문 인력을 대거 흡수해 연구개발(R&D) 조직을 강화하고 국내외 우수 인재 유치에 회사 임원들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단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해왔던 대학과의 협업은 중장기 프로젝트와 차세대 사업에 대한 연구개발로 심화시키고 있다. 단순 인력 확보와 취업 지원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산학 협력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