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과학기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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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7일 대전과학고 강당.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나타나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은 과학기술 정책을 설명하는 이 후보의 제10차 타운미팅이 있던 날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기초과학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연구원들의 R&D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안 된다”며 자율적인 연구 분위기를 강조했다. 과학기술 혁명에 국가 미래가 달려 있다는 말도 꺼냈다. 이날 박찬모, 신성철, 장인순 등 내로라하는 과학기술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해 이 후보의 얘기에 공감했다.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2011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1년 남짓 남은 임기의 국정운영 기조를 발표했다. ‘공생 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을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동반성장과 기업생태계, 인간애·창의·책임, 균형재정, 경제영토도 함께 언급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과 공존을 위한 에코시스템(생태계) 구축을 거론했다.

 ‘국가의 미래’라던 과학기술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과학기술계는 8·15 경축사를 들으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과학기술계 인사의 푸념 한마디. “우린 없어요. 과학기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출연연 선진화 방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핵심인데 실행조직이나 있습니까? 툭하면 자료제출에, 회의에만 참석하라고 하지.”

 정부는 지난 6월 출연연을 강소형 조직으로 개편하는 출연연 선진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다. 강소형 조직 개편의 방향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헷갈린다. 애초 시작 때부터 전후좌우 그림 없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당초 출연연을 한곳에 모으기로 했던 국과위의 돌아가는 모양새도 시원찮다. 도대체 진도가 안 나간다. 이유는 많다. 국과위가 국가 R&D 예산 75%에 대한 배분조정권을 갖고 있어도 정부부처와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 출연연 개편을 위해서는 지경부 쪽만 살펴봐도 최소한 13개 이상의 관련법률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수조원을 주물러야 하는 조직의 인력 규모가 지자체 면사무소보다도 못하다. 국과위로의 지배구조 일원화를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강소형 연구소 추진을 위한 블록펀딩(묶음예산) 예산은 처음 1조6000억원 얘기가 나왔으나 지금은 2000억원이 갓 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정부출연금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현 연구과제중심제(PBS) 내에서는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사전논의 없이 출연연 개편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지난달부터 정부 출연연에 국정감사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자료요청이 쇄도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정책 초점을 맞춘 주문이 주류다. 고졸자 취업문 확대요구는 그런대로 이해 간다. 그러나 전통재래시장 살려내라는 요구에서는 아연실색하게 한다.

 과학기술 활성화 대책을 묻고, 출연연 상생방안을 요구하는 정책 자료 요구는 뒷방 신세가 됐다. 국회마저도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과학기술 정책이 있기는 한 것인가.


 박희범 전국취재팀 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