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마다 덕지덕지 붙은 다양한 색깔의 메모지, 그라피티라고 하기엔 다소 엉성해 보이는 그림들, 전날 밤에 누군가 사용한 게 분명한 침낭 꾸러미, 한쪽엔 라면을 잔뜩 쌓아둔 상자까지. 업체 사무실이라기엔 뭔가 어색했다. 차라리 대학교 동아리방이라는 설명이 적절해 보였다. 지난 5일 찾은 게임개발사 파비욘드더게임 사무실 풍경이다.
기자가 조심스레 “사무실이 매우 자유분방해 보인다”고 묻자 “조금 누추하죠. 다들 젊다 보니 서로 거리낌이 없어서”라고 서아람 대표(26)가 답했다.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26세. 대학을 휴학 중이거나 갓 졸업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기 보다 자유로운 환경이 어울릴 나이다. 사무실이 마치 동아리방처럼 느껴진 건 이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구성원 가운데 9명은 십년지기 친구 사이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이다 보니 굳이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결합한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동아리방 같은 분위기에 녹아들었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중학생이던 2000년 즈음 PC통신을 통해서다. 틈만 나면 채팅방에 모여 미래를 꿈꿨다. 또래 아이들이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등을 즐기고 있을 때, 그들은 이를 능가하는 대작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왜 하필이면 게임이었을까. 이성민 이사(26)는 “프로그램 개발을 잘하는 친구, 그림에 소질 있는 친구, 글을 잘 쓰는 친구 등 서로의 장점을 모아보니 그 교집합이 바로 게임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스마트폰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게임이라는 특정 분야를 정복하겠다는 꿈을 토대로 꽤 장시간 준비를 거친 것이다.
계획을 구체화한 건 2005년께부터다. 몇몇은 게임 제작을 위해 대학 진로를 바꿨다. 조금씩 돈도 모았다. 부모님의 반대는 당연했다. ‘좋은 기업에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고생을 사서 하냐’는 꾸중이 이어졌지만, 결심은 확고했다. 몇 년 뒤 사무실도 마련했다. 여름이면 열대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추위를 이겨내야 할 만큼 환경은 열악했다. ‘헝그리 정신’은 이때 체득했다.
2010년부터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청 주최 ‘중소벤처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것을 비롯해 세계적인 인디게임 공모전인 ‘인디케이드’에서 심사위원상도 받았다. 지난 5월부터는 서울벤처인큐베이터에서 마련해준 현재의 사무실로 옮겼다.
파비욘드더게임이 현재 매진하는 작업은 (MORPG) ‘FATUM’ 개발이다. 올해 안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목표다. 전투장면이 기존 웹게임보다 실감나고, 시나리오에 특히 자신 있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만의 색깔을 담고 싶습니다. 우리만의 냄새, 깊이가 있는 게임이요. 게임 쪽은 스마트폰 앱 개발 분야만큼 20대 창업이 많지 않은데 우리가 새롭게 성공 신화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서 대표는 “젊음이 무기죠”라고 말했다. 그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일어나는 것이 바로 벤처 정신이고 젊은이의 특권”이라며 “경험 부족도 강인한 체력과 헝그리 정신으로 채워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m